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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itorium/Interest

황금의 나라 잉카제국의 마지막 황제가 세례를 받은 이유

 

남아메리카 대륙의 안데스 산맥에 걸친 광대한 영토의 제국을 영위하던 잉카는 기원후 945년부터 1533년까지 존재했던 나라였지만 스페인에 의해 무너지는 데는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황금의 나라 잉카제국의 멸망

16세기에 들어와서 잉카는 엘도라도(황금의 도시)라고 불리며 일확천금을 노리는 많은 유럽인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그 중에는 피사로도 있었다. 피사로는 스페인 왕 카를 5세에게 잉카 정복을 허락 받았다. 허락의 조건은 잉카에서 얻은 재물의 5분의 1을 왕에게 바치며 잉카의 총독이 된다는 거래였다.

두 차례의 탐사 후에 드디어 1532년 피사로는 1532 1, 3척의 배에 3백여 명의 병사와 27마리의 말을 태우고 2차 탐사 때 상륙했던 경로로 잉카제국에 침입하였다. 그 경로는 지금의 페루 지역이었다.

그러나 잉카제국은 몇 백 명의 군사로 정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으나 얼마되지 않아 고심하던 피사로에게 행운의 여신이 미소 짓는 일이 벌어진다. 바로 이복형제간의 왕위 다툼으로 내부 분란이 생긴 것이다. 결국 동생인 아타왈파가 황제가 되었지만, 피사로는 이 과정에서 생긴 내부의 혼란을 놓치지 않았다. 

 

 

 

드디어 1532 9 24일 피사로는 2백 명도 군대를 이끌고 안데스 고원으로 진격하였다. 그리고 피사로는 스페인 군이 싸우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친선방문으로 왔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소문을 믿은 황제는 스페인과 우호관계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해왔다.

그러자 피사로는 군대를 이끌고 당당하게 카하마르카 시로 들어간 뒤 황제를 초대한다. 이에 속은 황제는 피사로의 명령에 따라 생포되고 말았다. 피사로가 아타왈파 황제를 생포하는 데 걸린 시간은 채 30분이 되지 않았다.

이때가 1532 11 15일이다.

 

아타왈파 황제가 세례를 받은 이유는

황제의 몸값으로 어마어마한 황금을 챙긴 피사로는 잉카 군이 황제를 구출하려는 계획을 세운다는 첩보를 입수하게 된다. 그러자 피사로는 급히 재판을 열어 아타왈파 황제를 반란음모죄로 사형을 선고하고 카하마르카 광장에서 화형에 처하기로 하였다.

이윽고 황제가 화형을 당하기 위해 끌려나오자 신부는 영혼의 구원를 위해 기독교로 개종하기를 권했지만 황제는 거절했다. 그러자 신부는 세례를 받으면 화형에서 교수형으로 감형시켜준다고 하였고 아타왈파는 놀랍게도 즉석에서 세례를 받는다.

세례명은 프란시스코. 1533 8 29일 황제 프란시스코 아타왈파는 화형이 아닌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잉카의 마지막 황제가 되었다. 황제를 처형한 피사로는 곧 잉카의 수도 쿠스코를 점령하고 현재 페루인 수도인 리마를 건설하였다.

그때가 1533 11월로 황금의 나라 잉카는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그러면 아타왈파는 죽기직전 진심으로 개종을 원했을까? 아니다.

그 이유는 잉카의 황제들에 대한 사후 의식에 있다. 잉카의 역대 황제가 죽으면 미라로 만들어져 쿠스코의 태양의 신전에 안치되어야 태양의 아들로서 영원히 생명과 부활을 약속 받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죽더라도 형태가 보존되어야 하며 아타왈파가 세례를 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사체의 온전한 보존이지 개종따윈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