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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의미있는 일상

추석 음식 장만, 어머니~ 제가 할게요

 

어머니~ 제가 할게요

엘리베이터에 있던 신혼부부의 대화를 본의 아니게 듣게 되었다.

처음 맞는 명절에 시댁에 가야하는 새내기 주부는 시댁에서 지내야한 며칠과 음식장만이 꽤나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하긴 태어날때 배워서 태어나는 사람은 없으니 처음엔 누구나 부담스럽고 실수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다른 곳도 아닌 시댁에서의 실수는 평생을 두고 구설수에 오를 수 있어 긴장감은 더 하다.

 

<사진 출처 : 머니투데이>

 

신혼부부의 대화는 걱정하는 아내와 달래주는 남편의 풋풋한 내용으로 이어져 갔다. 그러다 아내가 한 마디 하였다.

"자기야, 어머니~ 제가 할게요. 나 이런말 안 한다."

"알았어, 너 아니어도 할 사람 많아."

둘은 마주 보며 웃음띤 얼굴로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내리는 신혼부부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런 앙큼한 것들이 있나 싶으며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다.

지인에게 들은 얘기를 전하니 대뜸 젊은것들 어쩌구 저쩌구 하며 흉을 본다. 그러더니 우리가 젊은 애들이라는 호칭을 써 가며 흉을 본다는것은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라며 한숨을 쉰다. 지인은 갱년기임에 틀림이 없다.

 

 

추석 음식 장만

잘 기억도 안 나는 결혼 후 첫 명절, 시어머니 옆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도무지 몰라 두 손만 가지런히 잡고 눈치만 보다가 양념 드리고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설겆이하고 그래도 저녁이면 몸은 천근만근 녹초가 되었다.

몸도 힘들지만 긴장을 풀 수 없어 더 힘들어 했던 것 같다. 새 사람이 들어왔으니 뭔가 새로운 명절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알 수 없는 강박관념으로 심신이 더 지치는 명절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젠 명절에 무엇을 해야하는지 눈을 감고도 할 수 있게 되었고 반대로 시어머니님의 기력은 쇠약해 졌다.

"어머니~ 이젠 제가 다 할게요."

명절 준비에 대한 권력(?)을 이양 받고 나서 음식의 종류나 양을 많이 축소했다. 서운해 하시는 어머니를 이해시키기도 하고 이해 못하셔도 그냥 밀어 부쳤다. 

어쩌겠는가, 그 동안은 어머님의 방식이 통하던 세월이었지만 이젠 내 방식으로 준비해야 하는데 말이다.

세월이 더 흐르고 흘러 만약 며느리를 보게 된다면 그리고 내 나이가 더 많아져 명절 준비를 넘겨줘야 하는데 며느리가 내 방식을 흐트러 버린다면 어떨까? 유쾌하지 않다.

이번 명절에 어머니를 명절 준비 고문으로 다시 모시는 방법을 강구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