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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느낌있는 여행

도심 한 가운데 섬처럼 떠 있는 상해 임시정부엔 비장함과 엄숙함이 더하고

 

도심 한 가운데 섬처럼 떠 있는 상해 임시정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상해 임시정부를 찾았다.

신천지 도시개발 중심에 위치한 임시정부는 말끔히 단장한 모습이지만 애잔한 느낌으로 보인건 날씨탓만은 아니었다. 

1919년 3.1운동 직후 국내 한성과 국외 상해와 연해주에는 각각의 임시정부가 있었으나 상해로 합쳐지고 몇 번의 이동을 거듭하며 백범 김구 선생을 필두로 독립운동의 중심역할을 하였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중국인들의 일본에 대한 감정은 우리와 같거나 더한 악감정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일본 관광객들이 여행을 우려할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과거 일본 제국 인사들을 겨냥한 한국인들의 의거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으로  평가하고 있어 개발 찬성자들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임시정부건물이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한다.

 

 

 

 

 

짧은 동영상을 관람 후 가파른 나무계단을 올라가며 3층으로 된 임시정부 내부를 둘러 보았다.

1층엔 소박한 주방이 있었고 장정 한 사람이면 꽉 찰듯한 좁은 나무 계단이 2층으로 이어졌다.

 

 

 

 

 

상해 임시정부엔 비장함과 엄숙함이 더하고

백범 김구선생의 집무실이자 침실이 꾸며져 있는 2층은 공간활용을 위해 옷장으로 침대를 가려놓았으며 3층엔 당시 임시정부 인사들이 기거하던 침실방이 꾸며져 있었다.

집무실겸 회의실이 별도로 있으나 모든 공간을 합쳐도 20평이 넘지는 않을것 같다.

당시 정치적 경제적 형편이 여의치 않았을테니 누추하고 초라한 것이야 어쩔 도리가 없겠지만 그 공간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경건하고 비장하고 엄숙했다.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은 일본의 항복으로 독립된 나라에 돌아올 수 있었으나 임시정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은 미국 때문에 이들은 개인자격으로 귀국했다고 한다.

치하 받자고 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개인자격으로 조용히 뒷문으로 들어오듯 입국해야할 이유도 없었는데 참으로 안타깝다.

 

 

 

 

 

전현직 대통령을 비롯해 국내외 유명 인사들이 성지처럼 들른다는 상해 임시정부, 성금을 내면 답례로 주는 작은 열쇠고리 속 백범 김구 선생의 모습을 보자니 창피하고 죄송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