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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itorium/History

프랑스혁명 속 여인 샤를로트 코르데와 장 폴 마라의 죽음

 

프랑스 혁명의 원인과 과정, 그리고 결말까지를 보면 구시대를 유지하려는 집단과 그것을 끝내려는 집단간의  다툼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혁명이 필요치 않은 귀족들은 어떻게해서든 사태를 진압하려 하고 이참에 세상을 바꿔보려는 시민들은 마지막 안간힘을 쓰다보니 양쪽 모두 희생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가운데 25세의 처녀 샤를로트 코르데가 있다.

 

장 폴 마라의 죽음

그녀가 역사적 사건의 주인공이 된 것은 25세의 여성이 당시 시민계급을 이끌던 장 폴 마라를 암살한 범인이기 때문이다. 마라는 언변이 뛰어나 냉철하고 직설적인 연설로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시민계급의 수장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나친 공포정치를 펼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반대파인 지롱드파의 지지자였던 샤를로트 코르데는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프랑스를 위해 마라 암살을 계획했고 실행에 옮겼다. 그녀는 암살에 성공했고 체포된 지 4일만에 단두대에 올랐다.

 

<다비드가 그린 마라의 죽음>

 

마라의 죽음을 두고 많은 화가들이 그림을 그렸다. 특히 다비드가 그린 마라의 죽음은 성스러움마저 느껴지게 한다. 다비드와 마라는 같은 자코뱅파였으며 친분이 있었던 사이였다. 당연히 그의 죽음에 많은 의미를 담고 싶었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를 죽인 암살자 샤를로트 코르데에 대한 그림들이다.

 

 

샤를로트 코르데의 죽음

지롱드파는 샤를로트 코르데를 '암살천사'라 칭하며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워 했으며 그녀의 행동을 추앙하는 그림을 그렸다. 암살 직후 프랑스 지도를 배경으로 먼 곳을 응시하는 그녀의 모습을 담은 그림은 암살자라기보다 죽음을 무릅쓴 영웅의 모습에 더 가깝다. 반면 마라의 모습은 채 반도 그려지지 않았다.

 

<폴 자크가 그린 샤를로트 코르데>

 

 

반면 자코뱅파가 그린 암살 직후의 코르데 그림은 단번에 그녀가 암살범임을 보여주고 그녀의 행동에 화가 난 시민계급의 여러 사람들을 역동적으로 그렸다. 겁에 질린 그녀의 모습은 지롱드파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표현했고 성난 군중의 모습은 자코뱅파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녀의 행동을 보는 시각이 전혀 다름을 잘 나타난 그림이다.

 

<장 조셉이 그린 샤를로트 코르데>

 

 

'역사가 평가해 줄것이다'라는 말을 하는 경우는 당장 그 일에 대해 객관적인 판단이 서지 않을 때이다. 과격한 언행으로 프랑스 혁명의 한 부분을 완성시킨 마라를 죽인 샤를로트 코르데는 암살천사가 아니라 암살자로 지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