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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의미있는 일상

눈물 바다에 빠진 남자 연기자들

▲ 사진 : KBS2

옛날 인기 여배우들에게는 '눈물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훈장처럼 붙어야 연기를 잘하는 거라고 인정을 했었다.

배우의 여러 연기 중 단연 으뜸은 눈물연기였고, 얼마나 시청자나 관객들의
동감을 얻어냈느냐에 따라 인기정도가 가려졌었다. 

반대로 남자배우들의 연기는  카리스마있게 연기하는 터프남, 또는 부드럽고 매너있는 젠틀남. 
이 두가지 유형의 남자로 나눠졌던 것 같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남자배우들의 눈물연기가 화면 가득 넘친다.
그것도 살짝 맺히는게 아니라 주르륵~ 흐르거나 폭풍 오열장면이 아주 많아졌다.

'눈물의 왕자'들이 많아져 이젠 여배우들과 눈물 배틀을 벌이고 있는 듯 하다.

내 기억에 가장 많은 남자배우들의 눈물연기를 본 것은 '에덴의 동쪽'이었다.
중반 쯤부터 마지막까지 봤는데 주연을 비롯한 조연의 남자배우들까지 합세해 누가 더 우는 연기를 잘하는지 경합을 벌였다.

                    ▲ 사진 : MBC

동욱이와 명훈이가 서로 바뀐 사실을 알게 된 후 부터는 주변가족들까지 우는 연기에 합세해 한회분 거의 장면장면이 모두 울음바다였던 것을 본 기억이 있다.

그땐 정말 그만 좀 울고 그냥 담백한 대사를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계속 눈물연기만 보니 감정이 더 무뎌짐을 넘어 '또 울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게다가 여자도 아닌 남자의 눈물은 어쩌다 한번, 한 방울이 찡한거지 매일, 주륵주륵 흐르는 눈물은 답답해 보인다.


그런데 요즘 드라마는 상태가 더 심각하다.
그래도 전엔 슬플 때만 울었는데 지금은 슬퍼서 울고, 기뻐서 울고, 화나서 울고, 속상해도 울고, 외로워도 울고, 미안해도 울고 모든 감정에 눈물연기가 자동으로 따라온다.


우리나라 남자들이 이렇게 감성이 풍부했던가?
아님 나는 몰랐지만 대중들의 바람인가?
아님 각박한 삶을 지탱하는 현대인들에게 작으나마 눈물 연기를 통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여유를 주고자 함인가?

어찌됐든 남자배우들의 눈물연기를 반으로 줄여도 크게 문제되지는 않을 듯 싶다.
눈물을 흘리는 남자배우들의 연령대가 낮은 걸 보면 혹시 요즘 젊은 남성들은 눈물이 많은데 내가 잘 모르고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일본 여성 관객들이 우리 나라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유 중 하나가 눈물 흘리는 모습때문이라는 얘기를 얼핏 듣기도 했지만 점점 늘어만 가는 남자배우들의 눈물연기가 적절하기 보다는 차고 넘치는 듯 해서 안타깝다.

실은 이 눈물도 아무나 흘리지는 않는다.
나이가 많은 중년 남자배우들은 함부로 울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작가나 연출자가 울리지 않는다.

어린 주연배우만 울리고 중년의 남자배우들에게는 눈물없는 희노애락의 감정연기를 요구하는데 그들은 적절히 아니 더 자연스럽게 연기로 표현한다.

어느 방송국에서 하는 오디션 프로를 보니 아무 대사없이 눈빛만으로도 여러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고 하던데 그말이 다 맞지는 않은 것 같다.

우는 연기보다 웃는 연기가 더 힘들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이유는 가짜 웃음은 웬만한 내공이 없는 연기자는 들통이 난다.
정말 실감나게 웃음 연기를 하는 연기자는 얼마 못 본 듯하다.

가짜 웃음은 헛헛함이 있다.
공주의 남자에서 수양대군이 웃음과 같은 헛헛함 말이다.

그런데 우는 연기는 대부분 다들 잘하는 것 같다.
코가 빨개지고 심지어 콧물까지 흐르는 눈물연기.
그래서 연말 시상식때 수상자들의 감동적인 수상소감, 특히 울면서 하는 소감은 가재미 눈으로 보게 된다.

'저게 진짜일까? 연기일까?' 아무리 매의 눈으로 봐도 잘 모르겠다.
배우가 하는 눈물 연기의 눈물이 가지는 진정성을 폄하하거나 곡해하자는 것은 아니고 훈남의 얼굴로 더 다양한 표정과 감정을 연기하는 그들을 보고 싶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