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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itorium/History

남산 봉수대와 성곽 - 한류의 중심지로 변신 중

 

서울 시내 한 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남산은 높이가 262m이며 조선시대 정궁인 경복궁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경복궁은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산들이 있는데 동에는 낙산 서에는 인왕산 남에는 남산 북쪽으로는 북악산이 감싸듯 둘러서 있다.

남산의 옛이름은 목멱산으로 소나무를 비롯한 울창한 산림이 물과 어우러져 풍광이 아름다워 남산 아래 살았던 선비들이 좋아했던  곳이다. 

 

 

 

남산의 성곽 

조선은 사방의 산을 잇는 성곽을 쌓아 경복궁을 보호했는데 남산에 가면 성곽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태조때 쌓은 성곽을 세종와 숙종때 더 튼튼하게 보수공사를 하였다. 성벽 끝에는 적의 동태를 살피거나 몸을 숨기기 위한 낮은 담장을 만들었는데 이를 여장이라하며 여장과 여장 사이에 틈을 두어 타구라 불렀다.

 

 

연결된 여장은 마치 요철 무늬처럼 보인다. 이는 적의 공격으로 한 개의 여장이 무너져도 그 부분만 무너질 뿐 나머지 여장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하였다. 여장에는 공격과 감시를 위한  총안구멍이 세 개씩 뚫려있는데 가운데 구멍은 성벽 가까이 있는 적을 공격하라고 구멍이 아래쪽으로 경사져 있고(근총안), 양 옆의 구멍은 멀리 있는 적을 공격(원총안)하라고 평평하다. 

조선의 통신 제도인 봉수대를 세워 연기나 불꽃으로 메세지를 전달했었다. 통신 방법은 각 상황에 맞게 낮엔 연기를 피우고 밤엔 불꽃을 피웠으며 몇 개의 봉수대에 불을 피워느냐에 따라 전하는 내용이 달랐다.

 

 

남산 봉수대는 최종 목적지

평상시 아무 일이 없다는 뜻으로 1개의 봉수대만 불(연기)을 피우고  적군이 멀리 오고 있다는 뜻으로 2개의 봉수대를, 적이 국경 근처에 왔다면 3개의 봉수대를, 적이 국경을 넘었다면 4개의 봉수대를, 전쟁이 시작되었다면 5개의 봉수대에 불(연기)를 피워 국경 상황을 알렸다.

 

 

 

그 최종 목적지가 바로 남산 봉수대이다. 봉수대는 24시간 교대 근무로 불이 꺼지지 않게 관리하여야만 했고 다른 일과 겸업하지 못했다. 위급상황을 적절히 알리는 병사에겐 상이 주어지지만 그렇지 못하면 엄한 형벌이 주어졌다.  

봉수대는 시작점인 국경이나 해안에 설치된 연변봉수와 그 종점인 남산의 경봉수, 그리고 그 사이를 이어주는 내지봉수로 나눌수 있는데 전국에 총 5개의 봉수로가 있었다.

 

 

 

제1로는 함경도에서 시작해 강원도와 경기도를 거쳐 오고, 제2로는 경상도 동래를 시작해 충북과 경기도를 거쳐오고, 제3로는 평안도의 압록강에서 시작해 황해도 경기도를 거쳐 남산에 도착한다. 제4로는 평안도 의주에서 시작해 서해안을 거쳐 오고, 제5로는 전남의 돌산도 방답진을 시작해 전남과 전북을 거치고 해안을 따라 남으로 전해졌다. 북의 봉수로는 오랑캐를 남의 봉수로는 왜구의 침입에 신속하게 대처하였다.

 

 

 

지금의 남산은 한류 열풍을 타고 이전에 없던 국제적인 인기를 받고 있다. 드라마의 영향을 받아 연인들의 사랑의 약속 장소 징표들이 남산의 또 다른 징표가 되었으며 최근에는 중국에서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의 영향으로 한국사람보다 중국인들이 훨씬 더 많은 관광명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