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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itorium/History

조선총독관저에서 경무대로 그리고 청와대까지 - 파란 기와의 비밀

 

대한민국 최고의 수반인 대통령이 머무는 곳, 청와대가 일반인에게 대문을 열어 다녀간 이가 백만을 훨씬 넘어섰다. 경복궁의 뒷 문 신무문과 마주보고 서 있는 파란 지붕이 인상적인 청와대를 보면 왠지 경외감이 느껴지는 건 아직도 경복궁의 임금과 청와대의 대통령을 동일시하는 우리네 정서 때문인가 보다.

 

청기와(파란기와)의 비밀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도읍지를 정하고 경복궁을 세우고 나서 세종에 이르렀을 때 신무문 뒷 편에 있던 고려의 별궁인 연흥전에 후원을 만들었다. 이곳이 지금의 청와대 자리이다.

청와대의 상징은 '파란 기와'이다. 옛날 임금이 살았던 궁궐의 지붕을 보면 구운 기와인 전돌(검은색)이 대부분인데 청와대의 기와는 파란색으로 이름도 파란 기와집이다.

 

 

 

청기와는 일반 기와와 달리 청자의 빛을 한번 더 발라 구운 아주 귀한 기와이다. 청자의 기술이 있었지만 대량생산 체제를 가진건 아니였고, 제조과정과 재료 구하기도 어려우니 특별한 곳, 궁궐, 그것도 임금이 계신 곳에만 올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의 궁궐에 올려진 파란 기와를 보고 넋을 잃은 중국 사신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을 보면 고려 시대때부터 파란 기와를 사용했던 것 같으며 청자빛 기와는 왕의 위엄과 화려함을 나타내기에 안성맞춤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서울 안에 있는 5대 궁궐인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을 통털어 파란 기와를 얹은 전각이 딱 한 곳 있다. 창덕궁에 있는 '선정전'이다. 임금이 신하를 국사를 논하던 전각중 하나이며 유일한 청기와가 있는 전각이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경복궁의 근정전과 사정전에 청기와를 올렸으며 예전 동궐도를 보면 창덕궁외에도 청기와를 얹은 전각들이 더 있었으나 난과 화재로 소실되었으며 이후에는 재정문제로 청기와로 복원이 되지 못했다.

지금도 햇빛 좋은 날 창덕궁에 가면 파란 지붕의 반짝임이 예사롭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조선총독관저 - 경무대 - 청와대로

일제가 들어와 경복궁의 앞을 막아 조선총독부를 짓고 경복궁 후원에 있던 전각들을 치우고 그 자리에 총독관저를 만들었다.  한옥의 기와 지붕을 얹은 서양식풍의 건물로 (왜관대총독관저) 경복궁으로 가는 북악산의 정기를 끊으려는 일제의 의도가 보이는 건물의 대표라 할 수 있겠다. 

 

 

 

 

일제가 망해 나가고 미군정 때 관저로 사용되다가 이승만 대통령이 경무대라는 이름으로  사용하였다. 이는 경복궁의 경자와 신무문의 무자를 합친 것으로 조선시대 때 임금이 직접 군사들의 훈련을 시찰하고 연회를 베풀던 곳의 이름인 경무대를 빌어왔다.

 

이후 윤보선 대통령 때 지금의 이름인 청와대가 정해졌다.

청와대는 1990년 대통령관저와 춘추관이 신축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청와대 일부가 개방되면서 국민들 곁으로 많이 다가왔다. 풍수지리적으로 가장 좋은 자리라는 이유로 한양의 도읍지가 되고 조선 법궁의 자리이면서 대한민국 대통령이 있는 현재의 청와대 자리가 정말 좋은 자리인지는 의문이다. 

그 자리와 관련된 사람들은 물론 넓게는 국민들까지 힘겨운 역사속에 던져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