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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itorium/History

영화 군도의 배경 - 철종시대의 삼정 문란과 진주민란(임술민란)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던 원범은 순원왕후를 앞세운 세도가 안동 김씨에 의해 조선 25대 임금의 자리에 오른다.

후사가 없던 헌종의 뒤를 이은 철종을 임금의 자리에 모신 안동 김씨들은 철종을 그림처럼 용상에 앉혀 놓고 무늬만 이씨 조선처럼 보이는 김씨들의 조선으로 세력을 키워 갔다.

 

 

철종시대의 삼정문란

안동 김씨들이 철종을 앞세워 무소불휘의 권력을 휘두르게 되니 사람들은 자리 보존을 위해  김씨 가문에 머리를 조아리고 알아서 재물을  바치었다. 돈으로 권력을 유지하고 관직을 사고 파는 등 부정부패와 부조리가 미관 말직에까지 이르게 되니 이런 상황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백성들이었다.

 

 

 

조세인 전정.군정.환정의 삼정이 극도로 문란해져 지방관리들은 중앙정부의 눈을 피해 과도하게 백성들에게 조세를 부담시키고 거둬들인 조세를 빼돌렸다.

당시 백성들에게 거둬 들이는 조세는 토지에 부과는 전정과 일정 나이대의 남자에게 부과하는 군정, 춘궁기에 빌려주었다가 돌려받는 환정이 있었다.

그런데 쓸모없는 땅에도 조세를 부과 하고 나이 많은 노인이나 죽은 사람에게도 군정 납부를 독촉하고 과도한 이자를 환곡에 부과하는 등 삼정의 문란으로 백성들의 생활이 도탄에 빠질 지경에 이르렀다.

 

 

진주민란(임술민란)과 삼정이정청

철종 13년, 백성들에게 부여된 과도한 조세와 양반들의 횡포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몰락한 양반인 유계춘, 이귀재, 김수만이 주축이 되어 진주에서 민란이 일어났다. 이들은 농민을 효과적으로 동원하고 이끌어갈 방법에 대해 논의를 하고 행동에 옮겼다.

동원된 농민들은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고 손에는 농기구를 들고 노래를 부르며 진주성으로 달려가 농성을 벌이는 한편 부패관리를 붙잡아 죄목을 따져 화형에 처하고 부정한 부호들의 집을 습격해 재물을 빼았았다.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이후 민란은 확산되었다.

이에 당황한 조정에서는 삼정이정청(三政釐整廳)이라는 임시 특별기구를 설치하여 흩어진 민심을 잡기 위한 노력을 하였는데 철종은 이전에 보였던 무기력한 모습과 달리 상당히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했다. 철종 자신이 농부 출신이라 조세로 인한 농민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삼정의 문란만큼은 자신이 바로 잡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중앙의 세도가와 지방 관리직은 부정부패로 연결되어 있던지라 삼정이정청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민란의 원인인 관리들은 유배를 보내고 민란의 주동자들은 처형을 하는 것으로 수습이 되었다. 안동 김씨 세력에 다시 한번 좌절한 철종은 주색에 빠져 이듬해 죽고 만다.   

 

 

정치권력을 앞세워 백성들을 착취하는 탐관오리에 대항하기 위해 일어선 농민들이 권력자의 입장에선 도적떼(군도)로만 보일 것이다. 하지만 권력을 앞세워 당당히 뺏어 가는 이들은 괜찮고 가진 것 이상을 빼앗겨 목숨마저 내 것이 아닌 백성들의 분노를 도적질이라 지탄할 수 있을까?  

민심이 천심이라고 했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그 후에 임금이 있음을 위정자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철종시대 때 일어난 민란을 배경으로 한 영화 '군도-민란의 시대'가 개봉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