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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itorium/History

임진왜란과 6.25 전쟁은 닮은 꼴 – 역사는 반복된다

 

64년 전, 1950 6 25일 북한은 새벽을 틈 타 남침을 강행했다. 남과 북의 전쟁이 시작되고 그 동안 준비를 철저히 했던 북한은 파죽지세로 남한을 몰아 부쳤다.

무방비 상태로 부산까지 몰리게 된 남한은 도저히 북한에 대항할 수 없게 되자 미국을 통해 유엔에 지원을 요청하게 된다. 그 때부터 미국과 소련, 그리고 중국 등이 우리 나라 전쟁에 끼어 들게 되었다. 미국은 소련과 중국 등 공산주의 세력 확장을 막아야 했고 우리는 미국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6.25 전쟁과 휴전협상

1950 9 15, 유엔 총사령관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서울은 탈환되었고 맥아더는 이 기세를 몰아 북으로 진격하라는 명령을 내리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유엔군은 뒤로 밀리는 상황이 돼버리고 말았다.  1951 1 4일 유엔군이 후퇴를 하게 되면서 6.25전쟁은 1년 남짓으로 끝날 듯 하다가   장기전으로 바뀌는 양상이 되었다.

 

 

 

맥아더의 유엔군은 심기일전하여 서울을 재탈환하면서 북으로 진격하려 하였으나 소련이 제기한 휴전협상에 미국을 비롯한 유엔이 동의를 하였다. 미국은 많은 인명피해와 추가비용의 부담으로 자국내의 비판이 일어나자 전쟁을 더 이상 장기전으로 끌고 갈 수 없다는 결론을 도달했고 그것은 소련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전쟁을 끝내야지 의미 없는 휴전은 향후 더 큰 전쟁을 예고하는 것이라며 반대입장을 표했고 휴전에 대한 거부의 표시로 미국을 따라 협상장에 갔던 국군대표단을 철수 시켰다. 게다가 미군의 동의 없이 반공포로들을 석방시켰으며 국군에게는 북으로 진격할 것을 명령했다.

하지만 이승만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은 휴전 협상에 돌입했다. 이승만 정부가 지원을 요청하면서 모든 군사작전권을 유엔군에게 넘겨줘 버렸기 때문에 한국군은 전쟁 당사국이면서도 휴전협상에서는 발언권이 거의 없었다.

결국 유엔군은 1953 727, 판문점에서 북한의 김일성과 중공군 대표 팽덕회가 참석한 가운데 휴전협상을 시작했다. 당시 한국군은 최덕신 소장만 혼자 배석하였고 유엔연합군 대표 클라크가 협상안에 사인을 했다

 

 

 

임진왜란과 6.25 전쟁의 닮은 꼴 역사는 반복된다

준비 없이 당했던 전쟁에 속수무책이었던 이승만 정부는 한 달도 안 되는 시기에 유엔군에 도움의 손길을 청하면서 전쟁 시 군작전권을 모두 넘겨 버렸다. 선택의 여지가 없던 상황이라고 여겨지면서도 안타까운 부분이다.

급박한 상황이었으니 권한이 무엇이던 간에 다 넘겨주어야 했던 것은 이해되지만 휴전이 아닌 정전으로라도 결론을 낼 수 있게 이승만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했어야 했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했던가?

1592년 무방비 상태에서 왜구의 침입을 받았던 임진왜란, 왜적이 부산에 닿자마자 조선의 운명은 왜적의 손아귀에 넘어 가기 직전이었다. 명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고 명나라는 군사를 보냈으나 전쟁에는 나서지 않았다.

명나라 군사들은 시간만 끌 뿐 전쟁을 흐지부지 끝내고 싶어했다. 왜적도 전쟁기간이 길어지자 회복되지 않은 피해만 늘어갔고 명나라에 협상을 제안했다. 명나라와 왜적은 조선을 빼 놓고 저들끼리 강화협상을 시작했다.

명나라는 북쪽을 일본은 남쪽을 차지하자는 명나라의 제안을 듣고 선조는 펄쩍 뛰면서 결사항쟁을 외쳤지만 정작 협상테이블에는 나아가지도 못했고 명나라와 일본이 마주 앉아 조선 땅을 나누고 있었다.

위급할 때 명나라 손에 조선의 군사지휘권을 모두 쥐어 주고 그 뒤에 앉아 주어진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했던 1598년의 조선과 1953년의 대한민국이 닮아 있음이 씁쓸하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기적 같은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이제 대한민국에서 전쟁의 흔적은 찾아 볼 수가 없다. 하지만 6.25는 끝난 전쟁이 아니다. 우리가 준비하고 있지 않으면   지난 날의 후회스런 선택과 결과를 또다시 초래할지도 모른다.

북한과의 관계나 미국이나 중국 등 여러 나라와의 입장 조율에 있어 철저히 준비하고 대비해야만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