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백제, 신라가 세력을 형성해 나라의 기틀을 마련해 갈 즈음 충북 단양은 옛 마한의 땅으로 삼국이 치열한 영토 다툼을 벌이던 지역이었다.

남한강을 끼고 있는 충북 단양은 한반도 중원의 요충지로 백제와 고구려 그리고 신라가 차례로 차지하며 주인이 바뀌었던 삼국의 흔적이 공존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특히 온달 장군과 관련된 설화와 그가 쌓았다는 온달산성, 온달동굴 등이 있어 온달과 평강공주의 사랑 이야기와 온달의 고구려를 향한 충혼을 다시금 그려 볼 수 있다.

 

 

 

 

고구려 25대 임금인 평원왕의 딸인 평강공주와 온달의 이야기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이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공주의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했던 말이 실제 상황이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평민과 공주의 러브 스토리는 행복한 결혼으로만 끝나지 않고 원석을 갈아 보석을 만들듯 평범한 사내를 훌륭한 장수로 탄생시켰다. 

현명한 공주의 지혜는 사람 하나를 살리고 나아가 자국인 고구려를 지키는데 큰 힘을 보탰다고 할 수 있겠다.

 

 

 

평원왕이 죽고 영양왕이 즉위하자 신라에 빼앗긴 을아단현(단양)을 되찾기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고 전쟁터로 향한다.

그는 이곳 성산에 산성을 쌓고 전쟁에 대비했는데 온달의 이름을 따서 온달산성이라 부른다고 한다.

길이는 600여미터이고 높이는 6-7미터 정도인 석성을 산 꼭대기에 쌓았다. 

 

 

 

온달산성이 있는 성산 아래에는 4만5천년전에 조성된 800여미터에 달하는 석회동굴이 있다.

온달장군이 이곳에 묵으며 수양과 수련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 온다. 동굴 속에만 서식하는 각종 동물과 곤충들이 아직도 있으며 종유석과 석순등이 낮게 형성되어 있어 안전모를 꼭 쓰고 들어가야 한다.

안전모는 입구에서 무료 대여해 준다.

 

 

 

온달장군이 꼭 되찾겠다 맹세했지만 그는 신라군의 화살에 맞아 전사한다.

그런데 그의 관이 움직이지 않자 평강공주가 관에 손을 얹으며 이제 집에 돌아가도 된다고 하자 그제서야 관이 땅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고구려의 장수로서 약속을 지키지 못한 묵중한 회한과 아내의 손을 잡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우직한 사내의 뒷 모습이 상상만으로도 먹먹하다.

 

<온달생가 조성중>

 

단양군청은 온달과 관련된 이곳에 공원을 조성하고 전시관을 마련해 놓았다.

역사적 시대 배경과 당시 이야기들을 현장 사진과 그림으로 전시해 놓았다. 그리고 수와 당나라의 궁궐을 당시 건축 양식에 따라 실사에 가까운 모형으로  만들어 각종 드라미 세트장으로 그리고 관광객에게는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단층이 주를 이루는 우리와 다르게 2층 3층의 형태인 중국의 건축물은 상당히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 낸다.

 

 

 

 

 

조용하기만한 지금과 달리 천 년 전 이곳 단양은 삼국의 혈투 속에 긴장과 혼란이 혼재하던 중원의 요충지로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삼국의 수많은 장수와 이름 없는 병사들의 목숨을 가져 갔을 단양의 온달성산에서 온달과 평강공주의 러브 스토리와 함께 역사 속으로 빠져 들어가 보았다.

 


Posted by Zoom-in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주부s 2014.08.23 18: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 번도 가본적 없는데, 충북 지나간다면 들려볼만 한 곳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