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예 12년'

 

 

 

노예제도에 대해 의견 대립을 보였던 미국내 남과 북은 흑인에게 있어 같은 하늘 아래지만 천지차이 세상이었다. 북쪽의 흑인들은 자신의 능력대로 살 수 있는 사람들이었고 남쪽의 흑인들은 '짐승'이라 불리며 인간 가축처럼 부리고 사고 팔 수 있는 대상물이었다.

 

 

 

솔로몬 노섭, 북쪽의 흑인으로 그가 가진 바이올린의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단란한 가족들과 함께 안정적인 생활을 하던 그는 어느 날 낯선이들의 꾀임에 빠져 납치 당하고 플랫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노예가 되어 남쪽으로 팔려 가게 된다.

 

 

 

강한 저항은 피비린내 나는 폭력으로 플랫의 육체와 정신을 망가뜨리기에 충분했으나 가족을 다시 만나려면 그는 살아남아야 했으며 끝까지 살아남은 그는 결국 스스로 '자유'를 쟁취 하였다.

비록 12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말이다.

 

 

미국의 흑인 노예는

미국내 흑인 노예에 대한 잔혹한 영화를 보면서 항상 의문점이 드는 것은 종교적인 신념을 가진 이들이 어떻게 인간에 대해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태생이 다르다는 고정관념과 함께 이토록 무자비할수 있을까 였다.

 

 

 

노예는 동서 고금 어느 시대나 있었다. 노예는 재산과 노동력의 기능을 가졌기 때문에 주인들은 이들을 이용해 더 많은 부의 축적을 원했을 것이고 이를 위해 나름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비인간적인 처우와 폭력이 어쩔수 없이 동반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흑인 노예들의 실상을 보고 분노를 금할수 없는 것은 그들을 부리는 이들이 한 손에 성경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노예들을 모아 놓고 성경 공부를 시키면서 백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그들이 짐승이라 여기는 노예들에게 글은 가르치지 않으면서 성경을 들려 주는 심사는 무엇인지. 성경을 잘 모르지만 성경에도 노예를 인정하는 대목이 있다고 한다. 

 

 

 

지금 네가 부리는 종의 주인은 하늘에 계신 분이다 이런 내용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노예의 원래 주인은 하느님인데 경외하는 하느님의 것을 이리 험하게 부리는 것을 하느님은 어찌 생각하실지...

 

 

정의가 있기는 한가요?

영화 중에 노예 플랫은 인간성 좋은 백인을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던 중 '정의가 있었다면 제가 여기에 있었을까요?'라는 말을 하는데 그의 말이 가슴을 찌른다. 

1840년대 평범한 미국 북부의 흑인 솔로몬 노섭에게 정의는 없었다. 그는 불법 납치, 매매당하고 강제 노역에 시달리고 무자비한 폭력에 몸이 부서지는 고통 속에서 정신만은 무너지지 않으려 참고 또 참았다.

 

 

 

그는 자유로운 삶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으며 그것을 쟁취해 그가 생각하는 정의가 살아있음을 증명하였다.

미국내 흑백 인종 갈등이 잊혀질만하면 터지는 바람에 자주 긴장과 불안을 초래하는데 얼마전에도 흑인 소년 사건으로 미국이 불안하다. 역사적으로 풀리지 않은 감정의 앙금들이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서로를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라'는 성경 말씀이 왜 특정 인종에게는 적용되기가 어려운지 황색인종인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Posted by Zoo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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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08.27 1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이 영화보면서 많이 울었어요 ㅠㅠ

  2. BlogIcon 이바구™ - 2014.08.27 14: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이 영화를 봤는데 참 많이 답답하더군요.

  3.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08.27 15: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야, 이야..
    어릴때 흑백TV를 통해 보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쿤타킨테..이때 노예보려고 TV참 많이 팔렸다고해요.

  4. BlogIcon 건강정보 2014.08.27 16: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영화 보면서 참.......마음이 아팠습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