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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느낌있는 여행

사육신묘에서 충절을 만나다


여의도 63빌딩 인근에서 매년 세계 불꽃 축제를 한다.
불꽃 축제를 알리는 블로그에는 불꽃 쇼를 잘 볼 수 있는 명당자리로 근처 곳곳을 소개하고 있다.

그 중에서 사육신묘도 눈에 띄었다.
근처에 있으면서도 자주가지 못했던 곳이라 오랜만에 찾아 보았다.


사육신의 시대배경은 얼마 전에 끝난 사극 '공주의 남자'가 그려진 단종, 세조의 시기이다.

사육신은 집현전 학사로서 세종의 신임을 받고, 문종에게서 나이 어린 세자(단종)를 잘 보필하여 달라는 고명()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단종 복위를 주장하다 처형당한 충신들이다.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와 1982년 국사편찬위원회의에서 현창된 김문기(:)를 말한다. 

그래서 의절사에는 6인이 아닌 7인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 정면 사진에는 6인에 위패가 보이지만 왼쪽으로 하나의 위패가 더 놓여 있다.
           그리고 추모대제가 열려서 향로에는 아직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다.


조선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목숨을 바친 사육신의 충절과 의기를 추모하여, 1691년(숙종 17) 이곳에 민절서원()을 세우고, 1782년(정조 6)에는 신도비()를 세웠다.

서울시는 1955년 그 자리에 육각()의 사육신 묘비를 세우고 묘역을 수축하였다.
원래 이곳에는 성삼문, 박팽년, 이개, 유응부만 묻혔으나, 1977∼1978년 사육신 묘역 정화사업 때 하위지, 유성원, 김문기의 가묘()도 추봉()하였다.


사육신묘는 1972년 5월 25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8호로 지정되었다. <자료 : 네이버 백과사전>


사육신들이 단종을 향한 충절을 기록한 시조를 '사육신충의가' 또는 '육신애상가'라고 한다.


이 몸이 죽어 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랑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 성삼문

가마귀 눈비 맞아 희는 듯 검노매라
야광 명월이야 밤인들 어두우랴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변할 줄이 있으랴. - 박팽년


창 안에 혔는 촛불 눌과 이별하였관대
겉으로 눈물 지고 속타는 줄 모르는고
저 촛불 날과 같아야 속타는 줄 모르더라.  - 이개


간밤에 부던 바람 눈서리 치단 말가
낙락장송이 다 기울어지단 말가
하물며 못다 핀 꽃이야 일러 무삼하리요.  - 유응부

초당에 일이 없어 거문고를 베고 누워
태평성대를 꿈에서 보려더니,
문전의 수성 어적이 잠든 나를 깨와라.  - 유성원


세조의 왕위 찬탈에 반대하고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잡혀 죽은 사육신들이 그들의 충성을 읊은 시조이다. 
하위지()의 시조를 제외한 성삼문()·박팽년)·이개()·유성원()·유응부() 등 다섯 사람의 시조가 한 편씩 수록되어 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매년 10월 9일에 사육신묘에서는 사육신의 충절을 기리는 추모제가 열린다.
오늘도 12시경에 추모제가 열렸는데 그 사실을 몰라 추모대제 행사 장면을 사진에 담지 못했다.
대신 관련 기사와 사진을 언론 기사에서 가져왔다.


동작구는 사육신 순절 제555주년을 맞아 9일 동작구 사육신 의절사에서 사육신 후손과 주민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육신추모대제'를 봉행했다.
이날 추모대제에서 문충실 구청장은 헌작례 순서에서 초헌관을 하며 사육신의 충절을 기렸다.
<출처 : 연합뉴스>



사육신묘는 충신들의 위패가 모셔신 엄숙한 장소이지만 근린 공원으로도 가꾸어져 있다.
일요일 오후여서인지 연인들이 벤치를 하나씩 점령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제는 불꽃 축제를 구경하려는 인파들로 이 위치가 최고의 명당자리 였을게다.

 

                    ▲ 2010 불꽃축제 (사진 : 한화)


10월 9일 한글날이다.

한글 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한 집현전 학자들이기도 했던 사육신들의 추모제가 한글날에 열리는 게 특별한 의미가 있을거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