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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느낌있는 여행

항일 운동가이며 대학자인 면암 최익현을 모신 모덕사

 

 슬프다! 지난해 10월에 생긴 일은 우리 민족 사상 처음있는 하루밤 사이에 쪼각종이에 강제로 도장을 찍게 하여 모백년 종사가 드디어 망하니 천지 귀신이 놀라고 조종 혼령이 상통하리로다.

중략....

무릇, 우리 종실대신, 공경문무, 사농공고, 이서여대,는 마음과 힘을 합하고 병기를 날카롭게 하여 역적을 쳐 죽여 고기를 먹고, 가죽은 자리를 만들며, 원수 왜놈을 때려 부수어 소혈을 무찔러 종자를 끊을 것이다.

믿는 바는 정의다! 강적을 두려워하지 마라! 감히 격문을 돌리노니 서로 격려하며 힘을 합하라!

 

 

 

1906년 2월 21일 면암 최익현 선생이 1905년 11월에 있었던 을사늑약의 부당함과 왜적에 대항하기를 겁내지 말고 일어나 항거하라는 취지의 격문이다.

74세라는 나이가 믿기질 않을만큼 열정적이며 직설적인 표현이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하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면암 선생은 74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는 상소를 황제께 올리고 지식 있는 선비와 백성들에게 알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1905년 면암 선생은 상소와 격문으로만 이 사태가 해결되지 않을 것 같자 죽음을 불사한 의병 투쟁을 결심하고 집을 떠나 낙안 군수였던 임병찬을 만나 순창으로 가면서 800여명의 의병을 모아 남원에 있는 왜군을 치고자 계획하였지만 황제가 보내 온 밀서에는 의병을 해산하라는 명령이 담겨 있었다. 

황제의 명이지만 이미 죽기를 각오한 면암 선생은 남원 진입을 시도하려다 그곳에 주둔한 병력이 조선군임을 알고는 같은 동족끼리 싸울 수는 없다며 눈물을 머금고 의병을 자진해산하였다.

 

 

 

교만한 탐욕은 흥에서 망으로 옮기는 계단이다. 자고로 남의 나라와 민족을 함부로 침락하고 능욕하다가 끝내 화란을 당하지 않는 예를 보지 못하였다.  

천리를 말하더라도 복선 화음은 불역의 정론일 것이다. 귀국이 앞으로 동양의 패권을 잡으려면 먼저 신의를 지켜라! 

 

 

 

 

 

4월23일 면암의 곁을 지키던 12명의 의병과 서울로 압송되어 일본의 재판을 받아 대마도에 감금된 면암 선생은 왜놈이 주는 음식으로 구차한 목숨을 지키느니 의(義)를 위해 죽겠노라 결심하고 단식하다 아사하였다.

 

 

 

신이 이곳에 온 이래 한술의 쌀도 한모금의 물도 모두 적의 손에서 나온지라 차마 입과 배로써 의를 더럽힐 수 없어 그대로 물리쳐 버리고 단식으로 지금 선왕의 의리에 따르고 있습니다. 

중략...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놈들의 무도한 위협을 겁내지 마시고 간사한 무리들의 아첨을 듣지 마시고 힘써 자주체제를 마련하여 .....

 

 

 

 

1800년대, 일본과 미국등 들이닥치는 외세에 혼란스럽고 불안했던 조선을 바르게 지키고 싶었던 면암 최익현 선생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곳이 모덕사이다.

모덕사는 고종황제가 보낸 밀지 가운데 '나라 일이 어지러움에 경의 높은 덕을 사모하노라'의 문구중 '모'와 '덕'을 취하여 헌액하였다.

 

 

 

매년 4월13일 조선말기 대학자인 면암 선생의 독립정신과 항일 투쟁 정신을 기리기 위해 청양군 주관의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