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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의미있는 일상

비오는 밤에만 운전하는 여자


몇 년전 여름 뙤약볕 아래 연습하며 우여곡절 끝에 운전면허를 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운전할 일 생겼다. 그것도 비오는 .... 밤에.... 우리 집 그분이 술 드시다 지하철 시간을 놓치셨는데 꼭~ 데리러 오란다.

택시 타고 오라고 하니
"괜찮어. 여기 ***역이야" 하고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래, 가자. 조심해서 가면 되지 뭐'
차에 타니 발이 브레이크에 안닿는다.

'키 차이도 별로 안나는데 왜 이렇게 뒤로 앉나 이분은'
의자를 앞으로 당기고 악셀과 브레이크에 발을 올려 보니 잘 맞다.

시동을 켰는데 유리창에 빗물이 많이 떨어져 앞이 잘 안보였다.  
닦으려고 했는데  이런.....뭘 눌러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 동안 '창문 열어 줘, 닫아 줘, 에어컨 켜, 꺼,'
시키기만 했더니 잘 모르겠다.
게다가 운전면허 연습에서부터 시험볼 때까지 비 온적이 한번도 없어서 작동 경험이 없다.

실내등을 켜고 이것 저것 만지니 드디어 작동한다.
'아~ 이거였군'
내친 김에 간단한 작동 스위치들을 시험해 보고 후진으로 차를 뺐다.

자~알 움직인다.
'역시 나는 운동신경이 좋아'

단지를 빠져 나와 큰 길로 가려면 우회전을 해야 하는데 마치 미지의 밀림같아 보여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차로에 들어서 악셀을 밟아 속력을 조금 높였다.  
방지턱을 가볍게 넘고 신호등에도 잘 멈추고 처음이지만 그리 떨리지도 않고 제대로 잘 하고 있는것 같았다.

다만 백미러에 물기가 있어 뒷차의 모습이 정확히 보이지 않아 조금 불편했던 것만 빼면 아주 좋았다.
다행히 늦은 시간에 비까지 내려 길은 한산해서 옆차나 뒷차 신경쓸 일도 별로 없었다.

라디오를 켜 볼까 했는데 핸들을 잡은 두 손을 뗄 수가 없다.
한 손을 떼는 순간 뭔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서 ....

'아~ 처음부터 켜고 올걸' 
나름 비 오는 밤의 드라이브 기분을 좀 내 볼라고 했더니만 잘 안되었다. 

드디어 그 분이 계신 곳 근처인지라 차를 인도쪽으로 붙이고 천천히 갔는데 저만치 앞에 그 분이 먼저 손을 흔든다.

뒷 자석에 태우니,
"여~ O여사 솜씨 좋으신데."
"알았으니까 조용히 하셔. 운전에 방해되니까"

얼마가지 않아 신호등 때문에 멈추었을 때 돌아보니 잠이 들어버린 그분.
'흠... 내 운전솜씨가 잠이 들 정도로 편안한 모양이군'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주차까지 완벽히 하고 차에서 내리는데 그 거만한 기분이란 표현할 수가 없다.
그 후로 몇 번 더 야간 운전을 했는데 여름이라 그런지 비가 오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점점 안정을 찾는 듯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아이를 차에 태워 데려다 줄 일이 생겼는데 시간이 오전 11시 쯤이었다.
주차장을 나와 큰 길로 나올 때 까지만 해도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그런데 차로에 들어서니
'오마이갓. 이거 이거 아닌데'

그 동안 정겹게 보였던 차들이 갑자기 괴물처럼 보였다.
옆차도 너무 가깝고 뒷차도 너무 가깝고 다닥다닥 붙은것 같이 느껴져 금방 부딪칠 것만 같다.

손끝이 찌릿하고 온 몸이 긴장되서 심장이 터질 것 만 같다.
아이가 불안해 할까봐 표정관리를 하면서 가는데
"엄마, 속도좀 내. 너무 느리잖아"

무사히 데려다 주고 무사히 돌아왔다.
차에서 내리는데 한숨이 저절로 나오고 등이 뻐근히 아파온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나는 밤에만 운전해서 불빛에 아른거리는 차들만 보다가 환한 대낮에 선명한 차들을 보니 완전히 다른 느낌을 받은 것이다. 

다시 운전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나는 밤에만 운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