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리나 졸리의 '체인질링'

 

 

 

1928년 LA는 부패한 경찰과 정치인들로 인해 무고한 시민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끌려가 감금되거나 죽임을 당하기도 하는등 암흑가 도시였다.

 

 

 

 

그곳에 납치 당한 아들의 생사여부를 알려 달라는 엄마의 호소에 귀를 닫은 무능력하고 부패한 경찰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목숨 건 투쟁을 벌이는 어머니가 있었다.

 

 

 

 

홀로 9살 아들을 키우던 크리스틴은 홀연히 사라진 아들을 찾기 위해 경찰에 신고 했지만 무심한 경찰은 그녀의 읍소를 무시했다.

그로부터 다섯달 뒤 아들을 찾았다며 데려 온 아이는 전혀 모르는 아이, 그런데 아이는 크리스틴이 엄마가 맞다며 그녀 품에 안기고 경찰의 설득에 아이를 데리고 집에 오지만 그 아이는 내 아들이 아니다.

 

 

 

 

그녀가 경찰에 찾아가 아들이 아님을 주장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경찰은 그녀를 아들의 양육을 거부하는 매정한 엄마로 몰아 결국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고 만다.

갑작스런 입원에 저항해 보지만 경찰과 결탁한 병원은 그녀를 중요 감시 대상 환자로 분류해 가혹행위도 서슴치 않는다.

 

 

 

 

경찰과 병원이 원하는 것은 아들을 인정하고 정신병원 입원이 자원이었음을 증명하는 사인을 하라는것.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지금 어디서 구조를 기다릴지도 모르는데 모르는 아이를 아들로 인정할 수 없다.

 

 

내 아들이 아니에요

땅에 떨어진 여성 인권이 낯설기만한 1920년대의 미국 상황이 적나라하게 그려진 이 영화에서 강한 인상의 안젤리나 졸리는 빨간 입술로 당시 강력했던 공권력에 대항해 상징적인 말들을 한다.

'내 아들이 아니야, 인정할 수 없다,'라고 말이다.

 

 

 

 

 

잃어버린 아들을 인질처럼 옥죄이며 오히려 그녀를 다그쳤던 경찰에 겁을 먹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아들을 찾기 위한 용기를 얻고 '아니야'를 외치고 또 외쳤다.

 

 

 

 

이 영화가 실화라기에 해피엔딩을 바라고 바랬건만 바라던 크리스틴의 아들 월터의 생사는 알 수 없는채로 영화는 끝난다.

다만 월터를 포함한 20명의 아이들을 납치하고 무참히 살해한 엽기 살인범이 지독한 두려움 속에 교수형에 처해졌다는걸 위로로 삼아야 했다.

 

 

 

 

 

경찰이 그들의 직무에 태만하는 동안 어린 월터는 엽기 살인마의 손에서 지옥같은 밤을 몇번이고 맞이해야 했고 부당함을 외치는 크리스틴의 입을 막기에 급급했다.

 

 

 

 

때로는 어린 아들을 잃은 비통한 엄마의 모습으로 때로는 부당한 공권력에 대항하는 강인한 엄마의 모습으로 안젤리나 졸리는 관객의 시선을 사로 잡는다.

결국 정의는 승리했지만 그녀에겐 아무 의미가 없다.

 

 

 

아들 월터가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Posted by Zoo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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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영도나그네 2015.07.07 16: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햐!
    정말 안타까운 내용의 영화군요...
    무능한 공권력게 맞서는 강한 모성애가 느껴지는 영화 같구요..
    정말 이런 사화가 없어져애 하는 데..
    오늘도 좋은 영화평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