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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의미있는 일상

딸에게 주는 엄마의 노파심 : 얘들, 돈 뜯는 애들이에요


20년도 더 된 실화.

서울역 지하철 역내에서 친구와 수다를 떨며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6-7살 정도의 여자 아이가 다가와 묻는다.
"여기서 기차 타나요?"
"어디 가는데?"
"남원이요."
"어? 그건 기차역으로 가야해. 여긴 지하철이야. 그런데 너 혼자 남원을 간다구?"
"기차만 타면 엄마가 데리러 오신다고 했어요."
"헉! "

그래도 너무 어린 여자아이가 혼자 가기엔 먼 거리인데...
"집 전화번호 알려줘봐. 언니들이 전화해서 서울로 오시라할께. 너 혼자는 못가."
"아니에요. 기차 타는데만 알려주면 갈 수 있어요."

친구와 나는 일단 아이를 데리고 나와서 기차역으로 향했다. 
광장을 가로질러 가면서 나와 친구는 아무래도 이 아이를 경찰이나 서울역 직원에게 맡기는게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마침 눈에 서울역광장 끝쯤에 경찰서인지 안내소인지 아이를 맡길만한 곳이 보여서 아이를 앞세워 데리고 들어갔다. 
아이는 약간 긴장한듯 땅만 바라보며 서 있었고 우리는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그런데 갑자기 그 분이 아이를 거칠게 잡더니 목에 걸고 있던 가방을 휙 벗겨 냈다.
아이도 놀라고 우리도 놀랬는데 더 놀란건 그 안에서 면도칼과 붉은 노끈이 나온 것이었다.
아이는 도망치려했지만 어린 아이라 잡힌 손에서 허우적거리더니 울어대기 시작했다.

"얘들, 돈 뜯는 애들이에요."

우린 등골이 오싹하고 다리가 후들거리는걸 참으며 그곳을 나왔다.
우리를 유인하려 했던건지 아니면 동정심을 유발해 돈을 달라고 하려했던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서울역이 무섭게 느껴졌다.


그 이후로 나는 길을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불친절해 졌다.

딸! 너에게 당부하는것 중 하나가 과한 친절을 베풀지 말라는 것이다.
특히 무거운 짐을 어디까지 들어달라고 부탁하거나, 길을 알려줬는데도 잘 모르겠으니 같이 가주면 안되느냐라고 하면 절대! 성별, 나이 고하를 불문하고 가면 안된다.

쭈뼛거리지도 말고 매몰차게 거절해야 한다.
"나도 다 알어."
라고 너는 말하지만 얼굴만 가지고 판단되지 않으니 조심 또 조심하는 수 밖에 없다.

가끔 인터넷에 사람의 여린 마음을 이용해 나쁜 짓을 하거나 선의의 행동을 했음에도 오해를 사고 욕까지 듣는 경우가 있어서 엄마가 노파심에 해주는 말이다.

내가 봐도 너는 얼굴에 '어리숙함'이라고 써 있거든.
이 헛똑똑이 아가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