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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의미있는 일상

입학사정관제 - 화려한 스펙에 멍드는 아이들


현재 고2인 아들녀석의 학교에서 입학사정관제 설명회에 참석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모대학에서 직접 나와서 한다고 하여 부랴부랴 달려갔다.
정시로 대학가기를 결정했지만 혹시나 건질 정보가 있나하는 마음에 참석하였다.

전년도 합격자와 불합격자의 자기소개서와 기타 첨부자료를 보여주면서 설명하였다.
주된 내용은 합격자나 불합격자의 당락여부가 학교 외부 활동 수준과 수상경력에 따라 결정된다는 내용이었다.

그 많은 활동과 수상 내역들을 보면서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이과 학생들의 자료라 그런지 각종 대회에 출전하고 수상한 내용들이 보통 5-6가지는 되었다.  

학교 공부를 하기도 벅찬데 어떻게 저런 활동들을 같이 할 수 있나?
부럽기도 했지만 얼마전 들은 얘기가 생각나, 곱지 않은 시선으로 입학사정관제 설명회를 들었다.



2학년 1학기 초에 대학을 정시로 갈거냐 수시로 갈거냐 결정해야 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정시를 목표로 준비하기로 결정하였기에, 물론 수시 지원은 하겠지만 수시를 위한 별도의 준비는 하지 않았었다.
굳이 입학사정관제로 지원할 생각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2학기에 들어와 아들녀석의 학교에서는 내신이 좋으니 무조건 수시준비를 하라기에 하는척만 하기로 하고 입학사정관 전형에 필요한 자료들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물어보려고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충 각 대학의 홈페이지에 보면 정해진 양식이 있으니 그걸 이용하면 되고 흔히 말하는 개인적인 스펙은 책자로 만들거나 화일정리를 하면 될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지금 고3 학생의 자기소개서를 대신 써주고 있다는 말을 했다.

갑자기 귀가 솔깃하면서
"아니 본인이 써야 하는거 아냐?"

그렇긴 하지만 강남쪽은 많이들 대신 작성해 준다고 하였다.
하긴 그런 뉴스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한술 더 뜨는 말은 그 고3 학생이 이과인데 특정대학을 가기 위해서 맞춤형 스펙을 쌓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3군데 대학교에 맞춰서 각각 따로따로 스펙을 쌓아서 책자로 3권을 만들었다고 한다.

누가?
그 학생의 부모들이 대신 나서서 각 대학이 요구하는 스펙을 만들어 줬다는 것이다. 

이 대학은 이러이러한 스펙들을 체크하니 이러이러한 대회에 출전하거나 수상해야 한다는 등의 실제적인 예까지 알려주고 컨설팅해주는 업체가 있다는 말과 함께 연락처를 알려 주겠다고 한다.

그 학생은 무려 18가지의 스펙을 쌓았고 그 자료들을 정리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괜찮다고 우린 정시로 갈거니까 그렇게까지 필요하지는 않다고 했지만 왠지모를 상대적 박탈감이 들었다.

대충 짐작해도 비용들이 만만치 않을것 같았다.
"그렇게 제출해도 다 알지 않을까? 전문가들인데"
"그럴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넘어가요."

나중에 필요하면 도움을 주겠다는 말을 들으면서 전화를 끊었다. 
갑자기 아들녀석이 저 아래로 몇 계단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 우울해졌다.
학원 다니지 않아도 특별한 간섭이 없어도 원하는 음식만 대령하면 내신도 모의고사도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녀석이라 걱정없었는데 우리가 너무 방치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동안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얼마 지나니 마음은 진정되었다.
그리고 다시 후배와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가장 궁금한 것이 그 학생의 결과였다. 

sky를 포함해 총 5개 정도의 대학에 접수했는데 3군데에서 서류가 통과되었다고 한다.  
"아니 서류가 통과됐다고? 걸러내지 못하는구나..."
"그럼요. 다 걸러내지는 못해요. 아직 면접이 남아서 완전 합격한 건 아니에요."

또 우울해 진다.
그 학생을 본적은 없지만 괜히 그 학생이 그 부모가 미워진다.
교육상 좋지 않을텐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지난 주 금요일 다시 후배와의 통화.
"걔 다 떨어졌어요. 면접에서 버벅거렸나봐요. 울산쪽 학교 알아본대요.
 애도 부모님들도 모두 힘들어 하는데 제 책임도 있는것 같아서 저도 괴롭네요."

"에고... 솔직히 이런 결과가 당연한거지. 자기가 한것도 아닌데 답변이 제대로 나왔겠어?  
 하지만 애를 생각하면 안됐네.
 그 실망감이 클텐데. 더구나 부모들까지 나서서 그 난리를 쳤는데도 안됐으니 오죽하겠어."

전화를 끊고 나서 마치 그 학생의 불합격이 사회정의의 실현인것 마냥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생애 첫번째로 기억될 수 있는 실패일 수도 있어서 안타깝기도 했다.
같은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그리고 비슷한 수험생을 둔 부모의 입장에서 그 마음이 헤아려지기도 하고.

입학사정관제가 수험생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잠재능력을 가진 학생들에게도 기회를 주기위한 좋은 제도라고는 하지만 그 말에 동의하거나 동감하는 수험생이나 수험생 부모들은 드물다.

오히려 각 대학들이 외고나 특목고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한 '꼼수'라는 말도 있다.
확실한 합격보장을 위해 스펙의 양이나 질이 점점 더 세진다.

그로인한 부담은 고스란히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몫이다.

숨어있는 잠재력을 가진 유능한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해서 그리고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 대학들은 학생들만큼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