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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의미있는 일상

피땀이 묻은 손에 남편이 건네준 생일선물


집안 물건을 정리하다 아이들 어릴 적 사진첩을 우연히 펼쳤는데 마침 눈에 들어 온 사진이 울 아들녀석이 한창 사건사고를 칠 때인 4-5살 무렵의 모습들이었다.
'나 장난꾸러기'라고 써 있는 모습들을 보면서 남편과 나는 박장대소를 하며 그 때로 돌아갔다.


그러다 다시 떠오르는 그때 그 사건!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내 생일날.

내 생일은 한여름 푹푹 찌는 7월이다. 
대부분 여자들이 그러하듯 가족들의 생일상은 신경쓰지만 정작 본인의 생일상은 제대로 차려 먹기가 힘들다. 
더구나 시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으니 더더욱 그렇다. 

그래도 외식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어머님께서 미역국을 끓여 놓을테니 일찍오라고 하셨다.
출근하는 남편에게도 전했다.
일찍 오라고 집에서 저녁 먹는다고...

퇴근 후 집에 오니 미역국에 맛있는 요리들로 상을 차려주신 어머님께 감사의 인사를 하고 남편을 기다렸다. 

1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
연락도 없고. 오는 중이려니 생각하고 기다렸다.
차려진 만찬의 상을 보고 아이들은 빨리 먹자고 보채는데 아빠가 오시면 먹자고 아이들을 달래며 기다렸다.

어머님과 나는 상을 가운데 두고 이런 저런 얘기를 했고 상 주위에서 놀던 아이들은 우르르 시동생 방으로 뛰어갔다.

날도 덥고 정신도 없고 슬슬 짜증도 나기 시작해 혹시나 하고 회사로 전화를 했다.
남편이 전화를 받는다.
'어라? 아직도 회사에 있네'

"왜 아직 안와?"
"왜? 뭔일 있어?"
"오늘 집에서 저녁 먹자고 했잖아."
"아! 깜박했다. 근데 난 저녁 먹었는데. 지금 갈테니 저녁은 애들이랑 먹어."
"엥?....알았어"

전화를 끊고 어이가 없었지만 어머님께 우리끼리 밥 먹자고 말씀드렸다.

그 때, 딸래미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순간적으로 뭔일이 났구나 느껴졌고 튕기듯이 시동생 방으로 달려갔다.

딸래미는 놀란 얼굴로 얼어붙듯이 서 있었고 아들녀석의 이마에서는 피가 주르르 흘러 뺨을 타고 떨어지고 있었다.
둘이 뛰다가 아들녀석이 침대 모서리에 이마를 찧으며 넘어진 모양이다.
내 눈에는 얼굴 반쪽이 피범벅이 된 것처럼 보였다.

"수건 주세요.!" 외치고 수건으로 이마를 막고 애를 안고 문 밖으로 뛰어 나왔다.
119를 부를 생각도 나지 않았고 119가 올 때까지 피나는 애를 안고 있을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다행히 큰 길과 가까워 바로 택시를 잡아 탈 수 있었고 기사 아저씨도 비상상황을 아시고 비상깜박이를 켜고 가까운 병원으로 빨리 가 주셨다. 

차 안에서 수건을 살짝 떼고 보니 어머나! 상처가 크지는 않은데 너무 깊다.
갑자기 무서워졌고 눈물이 나고 덜덜 떨렸다.
그런데 그때까지 별로 울지 않던 녀석이 내가 울자 따라 울기 시작했다.

병원 근처에 도착했는데 육교를 건너야 했다.
기사 아저씨가 클랙션을 울려줄테니 무단횡단을 하라고 소리쳐 주셔서 그냥 냅다 뛰었다.

응급실에서 아이를 받아든 의사가 소독약을 뿌리며 상처를 살펴보는데 아이를 잡고 앉은 나는 몸부림치는 애를 붙잡느라 얼굴엔 눈물과 땀이 손과 팔엔 피범벅이 되었고 몸은 한기를 느끼듯 덜덜 거렸다.

의사가 말하길 상처가 깊어 속을 먼저 꿰매고 겉을 한번 더 꿰매야 할것 같다고 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이 녀석이 너무 버둥거려 꿰맬 수가 없었다.
나보고 나가 있으라고 하더니 남자 의사 3명이 아이를 잡았다. 
상처 부위에 마취를 했지만 사지는 멀쩡하니 애는 겁에 질렸고 비명섞인 울음을 토해냈다.

얼마 후 이마에 사각붕대를 붙인 아이를 의사가 안고 나왔다. 
의자에 앉아서 애를 받고 달래다 집에 전화를 걸어 어머님을 안심시키고 남편이 오면 병원으로 오라고 말씀드렸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오기만 해봐. 아침에 말한걸 잊어버려? 게다가 이게 뭐야! 기다리다 애 다치게하고.'
한참 후 남편이 도착했고 내 품에 있던 녀석을 받아 안아서 상처 부위를 살폈고 내 눈치도 살폈다.

"전화한지가 언젠데 이제와?"
"이거 사느라고..."

주머니에서 꺼낸 선물 상자. 
받으려고 손을 내밀었는데 피로 얼룩진 손이 눈에 띄었다.

어이없는 웃음이 나오며
"생일날 이게 뭐야. 이마 꿰맨 애 안고 병원 응급실에서 선물 주고받기가 뭐냐고. 
 애가 이 모양인데 이런 선물이 감동적이겠어?"
"미안해."
"몰라. 배고파! 얼른 가서 밥먹어야 해."

그 날 어머님과 나는 식어버린 미역국에 밥 말아서 마셔(?)버렸다.
기운은 없고 날이 더워서 데워 먹기도 싫었고  배도 너무 고팠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물 상자 속에 무엇이 들었나 빨리 열어 보고 싶기도 했고.
선물은 디자인이 심플하면서 세련되 보이는 팔찌였다.
이마가 퉁퉁 부어 잠든 아이 옆에서  팔찌를 끼워 보았다.

영원히 잊지 못할 생일날의 추억을 준 남편을 째려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