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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의미있는 일상

뺑소니범을 검거한 수사반장 할머니


세상에 모든 할머니들이 그러하시듯 우리 시어머니의 손주 사랑 또한 각별하고 유별하시다.
아들만 낳으신 분이라 내가 첫 딸을 낳았을 때 엄청 좋아하셨다.
나는 딸이 없는 집에 딸이 생겨서 그런가보다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는 아들 낳아라" 하셨다.
헉! 아직 첫 출산의 기억이 아물지도 않았는데 둘째라니...
아들손주 욕심이신가? 손녀는 싫으신건가?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우리 딸래미는 할머니 덕분에 완전 호강스럽게 컸다.
옷이며 신발이며 모자며 등등등 어머니는 예뻐보이고 좋아보이는 건 모두 사다 입히셨다.

그러다 아들 녀석이 태어났는데 그 사랑이 그대로 물려져서 우리 아이들은 할머니의 사랑을 흠뻑 먹고 자랐다.



그런데 어느 날 할머니를 분노케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아들 녀석이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고 집에 들어 온 것이다.

7살무렵 검도학원을 끝내고 학원차에서 내려 자기가 타고 온 차를 보내고 앞으로 나가려는 순간 다른 학원차가 빵빵 거리며 다가 오자 멈칫 하며 놀라서 상체는 뒤로 뺐지만 발을 빼지 못해서 발등 위로 차가 지나간 모양이었다.

아저씨가 큰 소리로 야단치듯 말하자 애는 무서워서 아픈 발을 끌고 집으로 그냥 도망치듯 온 모양이었다. (나중에 아이 말과 아저씨 말을 종합해 보니 그런것 같았다)

직장으로 놀라신 어머님이 전화를 하셨다.
애 발이 말도 아니게 뭉그러졌는데 차에 치였다고 한다고.
일단 병원으로 빨리 데려가시라하고 나두 병원으로 갔다.

치료 받으며 우는 아이 소리가 들리고 어머니는 응급실 옆에서 샌들과 양말을 들고 계셨다.
샌들모양과 양말만(양말이 녹듯이 찢어져 있었다) 보니 발이 엉망진창이 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다행히 뼈는 다치지 않았고 살만 찰과상을 입었다고 한다.
당시가 여름인지라 덧날까 염려가 되었다.

아이를 집에 두고 남편과 사고 장소로 가 보았다.
그 장소는 각종 학원차들이 아이들을 태우거나 내리는 장소였는데 차들이 많은데다가 목격자가 없어서 범인(?) 잡는것을 포기하려 했었다.

그런데 다음 날.
어머님이 목격자를 찾았는데 노란 학원차였다고 당신이 직접 잡는다고 하셨다.
목격자 말에 의하면 그 아저씨가 애한테 윽박지르듯 큰 소리로 화를 내서 기억을 한다고 하셨다.

애한테 화를 냈다는 말에 어머님은 더 화가 나셨고 '그 놈을 꼭 잡는다'고 하셨다.
차가 서는 그 자리에서 노란 학원차가 올 때마다 어머님은 1:1 심문을 하셨고 3일인가 4일째 되는 날 '그 놈'을 잡았다며 연락처를 적은 쪽지를 건네 주셨다.

어머님의 잠복근무가 결실을 본 것이다.
엄마인 나도 못한 일을 할머니가 해내신 것이다.
50대 정도의 아저씨인데 중 고등학생 학원 차를 운영하느라 늦게 끝나니 그 때 전화를 달라고 하셨다고 한다.

남편이 전화를 해서 다음 날 집으로 수박을 한 통 사들고 오셨다.
애가 다친 줄 몰랐다고 하시며 고의가 아니라고 하셨다.
"고의든 아니든 어린 애가 있으면 아저씨가 조심해야지 큰 애도 아니고 왜 어린 애한테 소리를 지르냐고.
 애들 태우는 아저씨가 그러면 되냐고" 어머님은 큰 소리로 아저씨를 혼내셨다.

남편은 뼈를 다치지는 않았다고 하니 치료비만 부담해 주시고 아저씨도 애들 태우고 다니시는데 어른이 더 조심하시라고 말했다.

세상에 하나뿐인 금쪽같은 손주에게 상처를 입힌 '그 놈'을 잡아 어머님은 응징을 하신 것이다.
우리는 어머님이 잠복근무를 하신 줄 몰랐다.
나중에 들으니 생각할수록 분해서 잡아야겠다고 마음 먹고 근처 가게를 탐문수사해 목격자를 찾아내고 용의차량을 포착해 노란 차만 오면 일일이 불심검문을해서 잡아내신 것이다.

위대한 우리 어머님 '나는 OO이 할머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