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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itorium/History

조선왕릉 이야기(2) : 헌릉(제3대 태종)에서 현릉(제5대 문종)까지


왕릉을 처음 방문하는 계기는 초.중.고 시기에 학교 근처에 있는 왕릉으로 소풍을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말은 정확히 말하면 서울에 사는 또는 살았던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대부분의 조선 왕릉은 궁궐로부터 30Km이내에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조선 왕릉에 관심이 많은 분이거나 자녀 교육을 위해 왕릉을 찾아간 경우가 될 것이다.

조선왕릉이 궁궐과 가까운 거리에 조성된 이유는 왕권국가의 임금이란 지위 때문이다.
유교 국가였던 조선에서 왕릉 참배는 임금에겐 빼놓을 수 없는 국가 행사였다.
하지만 왕릉 참배는 임금이 궁궐을 잠시 비우는 상태라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비상 시에 언제든 궁궐로 돌아올 수 있는 최대의 거리를 감안해 왕릉을 반드시80리(30Km)안에 조성하였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왕릉도 있다.
제2대 정종의 후릉과 영월에 있는 제6대 단종의 장릉 그리고 수원에 있는 제22대 정조의 건릉이 그렇다.

조선 초 정종은 실제 고려의 수도에 있는 고려궁궐인 수창궁(당시엔 수도를 잠시 한양에서 개성으로 이전하기도 함)에서 많은 시절을 보냈기에 그 곳에 능을 조성한 것 같다.

강원도 영월에서 생을 마감한 단종은 당시 왕이 아닌 대군(노산군)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사망한 그 곳에 능이 조성되었다.

정조는 자신이 꿈꾸던 신도시 화성으로 아버지 사도세자(장조)의 능을 이장하면서 80리보다 먼 곳에 능을 조성할 수 없다는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지금의 수원에 묻혔다.

하지만 대부분의 능은 궁궐로부터 30Km 안에 조성되었고, 이는 후대의 임금을 위한 조치라 할 수 있다.


제3대 태종 : 헌릉

위치 : 서울 서초구 헌인릉길 42 / 사적 제 194호 / 1420(세종2) 조성

헌릉은 태종과 원경왕후의 능이 같은 언덕에 조성된 조선의 대표적인 쌍릉이다.
원경왕후는 태종보다 2년먼저 승하햇는데, 1422년(세종4년) 태종이 승하하자 세종은 어머니 원경왕후의 능 옆에 아버지를 모시고 쌍릉을 조성했다.

소전대는 제례의 마지막에 지방을 태우는 석물이다.
이는 태조의 건원릉과 헌릉에서만 볼 수 있다. 다른 왕릉에서는 예감이 있다.


제4대 세종 : 영릉

위치 :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 산 83-1 / 사적 제 195호 / 1469년(예종1) 조성

영릉은 세종과 소헌왕후의 능으로 조선왕릉 중 최초로 한 봉분 안에 안장된 합장릉이다.
소헌왕후가 승하했을 당시에는 지금의 서울 서초구 내곡동 헌릉의 서쪽에 능을 조성했으나, 자리가 불길하다는 이유로 예종 때에 지금의 여주로 옮겼다.

세종은 승하 전에 이미 자신의 묏자리를 봐두었다.
부왕인 태종의 헌릉 옆(지금의 인릉 자리)이 바로 그곳이다.
그리고 영릉에는 4년 전 승하한  부인 소헌왕후가 이미 영면해 있었다.

그러나 세종의 영릉은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옮겨지게 되는데, 훗날 둘째 아들인 수양대군(훗날 세조)이 영릉의 이장을 추진했고, 결국 손자인 예종에 의해 18년 만에 지금의 자리로 이장되었다.

영릉의 정자각이다.
정자각은 위에서 보면 '丁'모양이기 때문에 '정(丁)'자각'이라 불리며, 이 곳은 왕릉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이다. 바로 제사를 올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제5대 문종 : 현릉

위치 :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산 6-3(동구릉) / 사적 제193호 / 1452년(단종1) 조성

현릉에는 문종과 현덕왕후가 모셔져 있으며, 같은 능의 이름 아래 왕과 왕비의 능을 각각 다른 언덕위에 따로 만든 동원이강릉이다.

현덕왕후는 단종을 낳고 24세의 나이로 승하하여 안산의 소릉에 안장되었으나 단종복위사건에 의해 추폐되었다가 1512년(중종7)에 다시 복위되어 문종이 묻혀 있는 현릉으로 천장*되었다. 

두 능 사이에는 원래 소나무가 뺵뺵하게 있었는데, 저절로 말라 죽어 두 능 사이를 가리지 않게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 천장 : 이장(移葬)을 말함. 이미 썼던 묘를 다시 파서 다른 곳으로 옮겨 장사하는 것.

현릉의 혼유석이다. 혼유석이란 '혼령이 노는 돌'이란 뜻이다.
즉, 봉분 아래 잠든 영혼이 나와 쉬는 장소이다.

혼유석은 북 모양을 닮은 네개의 돌이 받치고 있는데, 이 돌에는 잡귀를 잡아먹는 귀신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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