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6대 임금은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단종이다. 그리고 단종의 무덤은 장릉이다.
그런데 조선의 10대 임금이었던 연산군의 무덤은 능이 아니라 연산군묘라 부른다.

조선 왕실과 관계가 있는 무덤인데도 어떤 곳은 '능', 어떤 곳은 '묘' 또 어떤 곳은 '원'으로 그 명칭에 차이가 있다.
정확히 조선 왕실은 42기의 능과 13기의 원 그리고 64기의 묘가 있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지난 글에서 알아본 영릉은 세종과 그의 부인인 소헌황후의 무덤이다.
이처럼 왕과 왕비의 무덤을 ''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연산군이나 광해군처럼 왕위에서 쫓겨나 일반 왕자(군)의 신분으로 강등된 인물들의 무덤은 ''라고 한다.
또한 왕의 자손들(대군 또는 공주, 옹주)이나 후궁들의 무덤도 묘를 붙이게 된다.

조선 왕실에는 원을 붙인 무덤이 13기가 있다.
그 중 하나인 영회원은 조선 제16대 왕인 인조의 왕세자였던 소현세자의 세자비 강씨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소현세자는 다음 왕위를 물려받을 왕세자였지만 왕이되기 전에 생을 마감한 비운의 주인공이다.
이처럼 왕이되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뜬 세자와 세자비의 무덤을 ''이라고 한다.

소현세자의 묘는 소경원이다.


제6대 단종 : 장릉

위치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산133-1 / 사적 제 196호 / 1581년(선조14) 조성

장릉은 단종의 능으로 단릉이다.
난간석, 병풍석, 무인석이 없고 석물 역시 왜소하고 간단하지만, 장능의 능침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아름답고 장엄하다.
1457년 단종이 숨을 거준 뒤 시신은 영월의 동강에 버려졌으나, 충성심 강한 영월 호장 엄홍도가 시신을 거두어 자신의 선산에 암매장하였고, 이후 묘를 찾아 봉분을 갖추게 되었다.

위치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능리 / 사적 제209호 / 1521년(중종16) 조성

사릉은 단종의 비 정순왕후의 능으로 능침의 규모가 매우 적고, 병풍석, 난간석 등도 간소하다.
정순왕후는 1521년(중종16)에 승하하였는데, 숙종에 의해 노산군이 단종으로 복위되자 정순왕후도 함께 복위되었으며, 신위는 창경궁에 모셔져 있다가 종묘에 안치되었다.
평생 단종을 생각하며 일생을 보냈다 하여 능호를 '사릉(思陵)'이라고 붙였다.


제7대 세조 : 광릉

위치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산99-2 / 사적 제197호 / 1468년(예종1) 조성

광릉은 같은 산줄기에 왕과 왕비를 각각 따로 봉안한 최초의 동원이강릉이다.
세조의 유언에 따라 간소하게 만들어졌으며,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르는 참도가 없다.
광릉 자리는 원래 다른 이의 묏자리였으나 풍수상 길지라 하여 주인이 세조에게 바쳤다고 전해진다.
일부 풍수가들은 세조의 광릉 자리가 뛰어나 조선 500여 년을 세조의 후손들이 통치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살아 생전은 조카의 왕자리를 빼았더니, 죽어서는 남의 묏자리까지 차지하였으니 그 죄값은 무엇으로 치렀을지 궁금하다.

광릉의 홍살문이다.
왕릉 안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이 금천교이다. 
금천은 보통 궁궐에 있는데, 어느 궁궐을 가든 천(川)이 나오고 금천교를 건너면 비로서 왕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왕릉 역시 승하하신 왕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작은 금천과 금천교가 조성되어 있다.

금천교를 건너면 왕릉의 영역안에 들어오는 것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인간의 세계이다.
그러나 이 홍살문을 통과하면 그 때부터 왕릉의 주인인 왕(또는 왕비)의 공간이 된다.
홍살문은 붉은 칠을 한 둥근 기둥 두개를 세운 뒤 위에 태극문양이 있는 살을 박아 놓았으며, 신성한 공간임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제8대 예종 : 창릉

위치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산 30-19(서오릉) / 사적 제198호 / 1469년(예종2) 조성

창릉은 예종과 계비 인순왕후의 능으로 동원이강릉이다.
병풍석은 없으나 봉분 주위에 난간석이 있으며, 다른 왕릉에 비해 풍화가 심하여 상태가 나쁘다.

예종의 즉위기간은 13개월이다.
그리고 어머니(정희왕후)의 결단으로 아들이 아닌 조카가 왕위를 이었으며, 예종은 조카 성종에 의해 창릉에 영면하게 된다.

위치 : 경기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리 / 사적 제205호 / 1461년(세조7) 조성

공릉은 예종의 정비 정순왕후의 능이다.
세자빈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세자빈 묘로 간략히 조성되었으며, 병풍석과 난간석, 망주석도 없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진 참도가 'ㄱ'자로 꺽인 점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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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무릉도원 2012.01.22 07: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선의 아픈 역사를 다시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네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행복한 명절 보내세요...*^*

  2. BlogIcon 라오니스 2012.01.22 08: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광릉에서 포스가 느껴지는대요...
    장릉은 직접 가봤습니다... 단종의 비애가 느껴지더군요..

  3. BlogIcon 작가 남시언 2012.01.22 11: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흥미로운 글 잘 보고 갑니다 ^^

  4. BlogIcon 윤가랑 2012.01.22 12: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에 들립니다 ㅎ 즐겁고 행복한 설명절 보내세요^^

  5. BlogIcon 신구조화 2012.01.22 12: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엄이 느껴지네요~^^
    좋은 글 잘보고갑니다~^^

  6. 2012.01.22 13: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7. BlogIcon 원초적한량 2012.01.22 14: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는 언제나 재미있네요...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즐거운 명절 되시구 복 많이 받으세요...소원하시는일도 모두 이루어지시길 기원합니다..^^

  8. BlogIcon Yujin Hwang 2012.01.22 15: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광릉을 하늘에서 보니 완전 다른 나라 풍경같아요.
    사람들은 이렇게 좋은 곳을 두고 베트남으로 여행하잖아요...ㅎㅎ
    세계인을 유치할 관광지로 좀더 발달되길 바래봅니다.

  9. BlogIcon *저녁노을* 2012.01.22 23: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부하고가요 명졸잘보내세요

  10. BlogIcon 돈재미 2012.01.23 05: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광릉이 참 신기한 모양을 하고 있군요.
    세조가 저지른 죄값으로 연산군이 나오고
    반란으로 중종이 올랐으며 광해가 쫓겨나
    인조가 오르고 나라가 절딴나는 두번의
    호란으로 수십만의 백성들이 잡혔갔지요.
    세조가 지은죄를 수십만의 백성이 짊어진 셈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