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을 보는 창/느낌있는 여행

아파트 숲 사이로 펼쳐진 오일장 구경


올해는 설을 이틀 앞두고 딸과 함께 둘이서 시댁으로  갔다. 
어머님께서 설 연휴가 앞이 기니까 하루 먼저 오면 어떻겠냐 하셔서 하루 먼저 가기로 했다.

마침 토요일이 양곡 오일장 서는 날이니 장을 보러 가기로 했다.
일찍 사다 두어도 되는 것들은 미리 장만했으니 자잘한 것들만 사면 된다고 하신다.
경기도라고는 하지만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인데 오일장이 선다고 한다.
몇 번 다녀오셨는데 구경하는 재미가 제법 있다고 볼 만하다고 하셨다.

 


토요일 아침부터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챙기니 꽤 큰 가방으로 한짐이 나왔다.
여자 둘이 쓰는 용품이 이렇게나 많다.
승용차를 타지 않고 버스를 타고 가는거라 마치 시골집을 가는 모양새가 됐다.
딸과 가방 끈을 한쪽씩 들고 우리는 웃음보를 터트렸다.

광역 버스 정류장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는데 딸내미가 배가 고프다며 계란을 사자고 했다.
"이거 완전 고향가는 그림이다 야. 귤도 까먹자."
우리는 또한번 크게 웃었다.

텅텅 빈 버스를 타고 짐가방을 발아래 두고 우리는 구운계란을 까 먹으며 음료수를 한모금씩 먹었다.
막히지 않는 길을 버스는 씽씽 달렸고 예상시간에 맞춰 시댁에 도착했다.



인사를 드리고 가방을 두자마자 장을 보러 세 여자가 나섰다.
닭과 떡국떡과 시금치만 사면 된다고 하셔서 장바구니는 안가져가기로 했다.
시댁 근처는 아파트를 짓느라 공사중인 곳들이 많다.

그곳을 지나쳐 조금 더 가니 아파트 동네 사이에 아직 옛 모습을 지닌 (철거가 안된) 건물들이 오아시스마냥 나타났고 빠른 템포의 트로트 메들리 테잎을 파는 리어카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명절을 앞 둔 오일장이라 그런지 입구부터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어머님은 우리를 안내하며 검은 고무줄 파는 걸 오랜만에 봤다며 알려주셨다.
하~ 정말 그곳엔 검은 고무줄과 노란 고무줄 한 뭉터기가 놓여 있었다.
예전엔 고무줄 넣을 일이 많아서 자주 보던 거였는데 ... 그러고보니 검은 고무줄을 못본지가 오래 되었다.


그리고 오래된 인형들과 오래된 빗들, 돋보기안경등 재활용품 박스에서 꺼냈음직한 것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직 연세 많으신 분들은 찾는 분들이 계신 모양이다.
그 옆에는 신발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요즘 인기가 많은 어그부츠가 많았고 털신도 보였다.
튼튼하고 따뜻해 보였다.
여자 손님들이 신발을 신고 이리저리 모양새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

그 옆에는 우리 딸내미의 눈을 사로 잡은 과자 가게가 있었다.
대충 20여가지쯤 되는 과자들을 무게로 팔고 있었는데 우리는 여기서부터 장을 보았다.
전병을 비롯해서 소라과자, 고구마과자, 두부튀김과자등 어릴 때 먹던 과자들이 바구니에 수북히 쌓여 있었다.

우리는 각자 먹고 싶은 과자를 골라서 샀고 하나씩 꺼내 먹으며 오일장 투어를 했다.
과자 가게와 붙어있는 곳은 족발을 팔고 있었다. 특유의 냄새가 아주 진하게 났다.
남편이 왔으면 벌써 샀겠지만 우리는 그냥 지나쳤다.



양곡 오일장은 가운데 좁은 길을 두고 양 옆으로 노점상들이 있었고 길은 꼬불꼬불 꽤 길었다.
양말가게에도 손님이 많았고 속옷가게에도 손님이 많았다.
우리는 서울에서 온 촌티를 팍팍내며 구경 삼매경에 빠졌다.

채소가게에서 부추를 찾았지만 없다고 해서 안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싱싱해 보이는 섬초를 4천원어치 샀는데 그야말로 한 보따리를 주셨다.
그리고 어머님이 좋아하는 미역곰치를 천원에 한 묶음 사고 대파가 천원이라 싸다고 한단 샀다.  

반찬가게에서 딸내미가 깻잎과 오징어무침을 사달라고 해서 한근씩 사고 우리는 검은 비닐 봉투를 나눠 들었다. 예상에 없던 것들 때문에 봉투가 늘어나자 딸내미가 투덜거린다.
왜 장바구니를 안가져왔냐고. 이럴줄 몰랐다고 하면서 우리는 약간 실갱이를 했다.

그러다보니 길 건너 리어카에서 방금 튀긴 꽈배기를 설탕에 묻혀 먹음직스럽게 진열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꽤배기를 먹고 딸내미는 핫도그를 먹었다. 갓 튀긴거라 그런지 맛있다.
꽈배기도 몇개 더 샀다.
그리고 어머니가 봐 두신 감자떡 파는 아저씨를 만나 감자떡을 사고 떡집으로 갔다.

떡국떡을 사는 데 떡집 아줌마가 말랑 말랑 뜨거운 가래떡을 잘라주며 먹어보라 하신다.
아주 쫄깃하다. 조청만 있으면 딱 좋겠다.

떡집 옆에는 사탕 종류를 파는 아저씨가 계셨는데 왕사탕을 비롯해서 각종 색깔사탕과 쫄깃한 젤리가 알록달록 진열되어 있었다. 할아버지나 할머니께 사다드리면 좋아하실 군것질 종류들이었다.
한참 빨아 먹어도 크기가 줄지 않아 흐믓했던 어릴 적 생각도 났다.

이제 닭집에 가서 닭 1마리만 사고 집에 가자고 했는데 닭 집에 가기 전에 키위를 좋아하는 손녀딸을 위해  키위를 한바구니 샀다. 이제 닭만 사면 된다.

그런데 트럭에서 사과를 파는 아저씨가 어머니 눈에 띄었다. 한 상자에 만원이란다.
엄청 싸다. 깍아 준것을 먹어보니 진짜 맛있다.
하지만 상자가 좀 작긴 해도 우리 손엔  벌서 비닐 봉지가 손가락마다 아슬아슬 걸려 있어 사과를 들기엔 무리이다 싶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결국 사과를 커다란 비닐 봉지에 담아 달라고 하셨고 택시를 타고 가자고 하셨다.

엄청난 비닐 봉지들을 들고 우린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 왔다.
사람도 많고 짐도 많아져 구경을 다 하지 못하고 와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다음 장날엔 천천히 구경하고 국수도 한그릇 먹고 와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