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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의미있는 일상

신학기 긴장한 엄마들을 노리는 그놈 목소리 - 보이스피싱의 공포감



월요일 아침 한의원에 침 맞으러 가는 길이었다.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전화가 왔다.
저장된 번호는 아닌데 눈에 익은 번호라 전화를 받았다.

"**이 엄마라예?"
경상도 사투리의 중년 남성 목소리다.
'학원 전화인가?'


가끔 학원 보내라는 상담전화를 받을때가 있다. 그런데

"**이가 많이 다쳤어예."
"예?!!"
"**아 엄마다. 울지 말고 찬찬히 말해라"
순간 이거 보이스피싱이다라는 생각이 스쳤다.

"엄마~~~ 엉엉엉 나 다쳤어~~~엉엉엉 무서워~~"
머리엔 '보이스피싱-끊어' 하는데
우는 애 목소리를 들으니 끊어야할지 말아야할지 마구 무섭고 불안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머리에선 '빨리 끊어 끊어 끊어'하는데, 손은 핸드폰을 꼭 잡고 애 목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결국 눈 질끈 감고 내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애한테 전화를 할려다 들은 말이 떠올랐다.

'애가 전화를 못 받게 해놓는다' 라는 말이 생각나 학교로 전화를 했다.
"선생님이시죠. 애가 다쳤다는 전화를 받았는데 확인좀 해주세요."
"몇반 누구죠? 어머니 금방 확인해드릴테니 전화끊으시고 기다리시는데 지금부터 오는 전화는 애하고 통화할때까지 받지 마세요."

전화를 끊고 그 전화가 또 올까봐 조바심을 내며 기다렸다. 아들녀석 번호가 바로 뜨고 전화가 왔다.
"엄마! 무슨 일이야?"
"너 괜찮은거지? 다쳤다는 전화를 받아서... 어이구야.."
"괜찮어.엄마는? 빨리 신고해."
"알았어. 오늘는 엄마한테 자주 문자해."
"알았어!"


그사이 학교에서 문자가 왔다.

'어머니, 통화중이셔서 문자드려요. ***학생은 학교에 있으니 걱정마세요.'
학교에 전화를 다시 걸어 애하고 통화했다고 알려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손은 아직도 덜덜 떨리고 다시 그 번호를 보니 예전에 썼던 번호였다.

병원에 들어가 잠시 숨을 고르는데 눈물이 나기 시작하고 가슴이 쿵쾅 뛰는게 진정이 안된다.간호사가 물을 한 잔 주고 순서보다 먼저 들어가 안정시켜주는 침을 맞고 잠깐 누웠다. 눈을 감고 누우니 전화기에서 들렸던 아이의 울음소리가 귀에 쟁쟁하여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예약했던 치료를 받고 얼른 집에 가서 쉬려고 외투를 입으며 남편에게 전화를 하려고 보니 그 번호로 부재중 전화가 3-4통 와 있었다.

'왜 또 했지?' 또 무섭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애하고 통화는 했냐고 하면서 경찰에 신고하라고 한다. 마침 경찰서가 멀지 않아 들어갔다.

여경에게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신고해도 잡기가 어렵다고 한다. 수신거부를 해 놓고 응대하지 말라고, 지금이 신학기라 긴장한 엄마들을 상대로 보이스피싱이 기승을 부리는 시기라고 했다. 아이와 자주 통화하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당장 피해는 없었고 이런 경우가 허다할텐데 생각하며 신고하지 않고 경찰서를 나왔다. 마음은 여전히 진정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오후 3시쯤 또 그 번호로 전화가 왔다. 그냥 끊으렸는데 다시 또 온다. 전화가를 꺼 버렸다.

전화를 받으면 혹시 우리 아이에 대해서 다 알고 있다고 협박할거 같아서 아예 무시해 버려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불안했다. 정말 다 알고 전화한건 아닐까?

1시간후쯤 전화를 켜고 불안한 마음에 지켜보니 그후론 전화가 오지 않았다.

저녁에 돌아온 녀석이 얼마나 반갑던지....아이구, 이쁜것...


▲ 출처 : 한국인터넷진흥원, 보이스피싱 피해 예방 10계명

지금 생각해보니 학교측의 신속한 응대에도 감사를 드려야겠다. 혹시나 아이의 전화를 받기 전에 내가 그 전화를 받을까봐 다른 전화 받지 말고 아이의 전화를 기다리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너무나 감사하다. 그리고 정말 신속하게 아이가 전화를 했다. 나중에 들으니 빛의 속도로 뛰어 오신 선생님께서 교실 문을 열어 제치며
"*** 누구야? 지금 빨리 엄마한테 전화드려" 하셨다고 한다. 최대한 빨리 아이의 안전을 알려주시려고 애쓰신 선생님들께 정말 감사하다. 

나름 꽤 이성적이고 쉽게 흥분하는 성격이 아닌데 거짓 전화라는 걸 알면서도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니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다 큰 녀석인데도 이러니 어린 아이들 둔 엄마들은 그냥 속아 넘어가기 쉽겠단 생각이 들었다.

엄마도 아이도 긴장하는 새학기, 혹여 비슷한 전화를 받으면 일단 맘 굳게 먹고 전화를 끊고 거꾸로 확인해야 한다.(그런데 이게 당해보면 쉽게 끊기가 어렵다) 그 놈들이 전화를 못끊게 자꾸 말을 시키고 확인할 시간여유를 주지 않는다고 하니 말이다.

정말 수명이 10년은 단축된 거 같다. 귀에 쟁쟁한 울음소리가 지워지려면 한참 걸릴것 같다. 에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