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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의미있는 일상

난 쪼잔한 아줌마인가봐....



친정엄마의 형제는 일곱 남매이시다. 이모는 네분( 친정엄마 포함 다섯자매), 외삼촌은 두분.

친정엄마는 서열2위. 큰이모는 여섯남매를 두셨고 그 밑으로는 1-2명정도의 자녀를 두셨다. 큰이모네와 우리집은 서울에 살았고 외사촌들이 1-2살 터울로 어릴때부터 자주 드나들어 사이가 가깝다.

그런데 세째이신 외삼촌부터는 결혼이 늦어져 외사촌이라해도 나이차가 많고 지방에 살아서 아주 어릴 때 한번 본 뒤로는 볼 기회가 없다가 결혼한다고 연락이 오면 그때서야 만나게 되니 서로 서먹서먹 했다.

이젠 7분중에 2분 외삼촌만 지방에 계시고 이모들은 다 서울에 사신다.

매주 토요일에 가게를 하시는 이모네 가게에 다섯할머니가 모여서 이야기 꽃을 피우신다. 주변에서 보기드믈게 7남매가 우애가 좋으시다. 게다가 큰이모네 큰아들인 외사촌 오빠가 외사촌 형제들을 잘 챙겨서 나는 외가쪽 친척들과 친하게 지낸다. 그런데 이모들 중 한분에게 서운한 감정이 있다.

 
외가쪽 친척중에 무슨 일이 있으면 우선 친정엄마가 소식을 알려주셔서 챙기라 말씀해 주신다. 그러면 전화를 하거나, 참석하거나 참석치 못하면 자그마한 봉투를 엄마편에 보낸다. 사실 그렇게 알려주시지 않으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사촌오빠는 가끔 애들한테 전화를 하기 때문에 오빠한테 연락을 받기도 한다.

 

몇년전 우리 큰 애가 큰 수술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모네 외손녀의 돌잔치와 1주 차이였다. 이모딸인 외사촌 동생은 서울에서 살고 있었고 그집과 우리 딸애가 수술할 병원은 한동네였다.  돌잔치가 먼저였고 1주후에 우리 딸이 수술하게 되어 있었다. 수술전 검사가 있어 마음이 어지러워 참석치 못하고 봉투만 엄마편에 보내고 전화로 축하한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래요, 언니 다음에 밥 한번 먹어요."

나이차가 있는데다 자주 보지 못하니 나에게 존댓말을 쓴다.
그 다음주에 딸아이가 수술을 하고 10일정도 입원을 했다. 조금 큰 수술이라 시댁과 친정의 친척들이 전화나 방문을 해주시고 격려의 말도 해주셨다. 특히 가까웠던 큰이모네는 다 병문안을 와 주셨다. 너무 감사했다. 그런데 그 이모네만 아무 연락고 없고 오시지도 않았다. 사실 그땐 서운하지 않았다. 그냥  지나갔다.

그리고 몇년후 이모 아들이 결혼한다고해서 참석했고 그 다음해 이모부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리고 손주가 태어났다고해서 병원에도 친정엄마랑 같이 갔다. 이모네 아들과 딸은 결혼해서 서울에서 살았다. 그리고 일년후 친손녀의 돌잔치가 있다고 친정엄마가 말씀을 해주셨다.


갑자기 몇년전 일이 떠올랐다. 왜 갑자기 그때 일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나는 친정엄마한테 참석하기 싫다고 했다.
"엄마, 나는 그 이모한테 섭섭해. 내가 이모부 병문안도 가고 장례식도 가고, 이모네 아들, 딸 결혼식도 가고, 애 낳을 때마다 산부인과도 가고, 돌잔치도 가고 한건 이모이구 집안 어른이니까 간거도 있지만 엄마 얼굴봐서 간거야. 그런데 그 이모네는 우리 애 수술할 때 아무 연락도 없었고 그 집 애들도 아무도 안왔어. 이모두 내가 이뻐서가 아니라 엄마때문에 나를 챙겼어야 하는거 아냐? 엄마는 나한테 여기 가라 저기 가라 다 말해주는데, 이모는 애들한테 왜 그런말 안해? 아님 말했는데도 안온거야? 좋은 일도 아니고 걱정되는 일에는 더 챙겨야 하는거 아냐? 애들은 그렇다쳐도 이모두 연락 없었어."
"어머! 그랬니? 걔가 왜 그랬지?"
"나 할만큼 했어. 이번 한번 안챙긴다고 흉봐도 안가고 싶어."
"그래두 얘...."

결국 돌잔치에 가지 않았다. 그런데 마음이 영...불편하다.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도 뭔가 풀지 않으면 계속 마음이 불편할것 같다. 이 소심하고 쪼잔한 아줌마 같으니라구. 상대방은 아무것도 모를텐데 나 혼자 속으로 북치구 장구치고 지쳐서 나가떨어져 있는 꼴이라니.

왜 대범하게 감정정리가 안되는지... 이것도 나이 탓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