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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itorium/과학

디폴트 네트워크와 세렌디피티 원리의 상관관계

 

디폴트 네트워크와 세렌디피티 원리의 상관관계

 

간혹 푹 쉬고 난 뒤에 머리 속이 잘 정돈된 것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리고 학창시절 밤새워 공부하는 것보다 공부 후 숙면을 취한 뒤 아침에 공부한 내용이 더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는 경험을 해 봤을 것이다. 과학은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 사진출처 : 국립암센터, 뇌 자기공명영상찰영(MRI)

 

1998년, 미국의 두뇌 연구가 마커스 라이클은 자기공명영상을 연구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실험참가자가 테스트 문제에 집중하면서 생각에 몰두하기 시작하자 두뇌 특정 영역들의 활동이 늘어나기 보다 줄어드는 현상을 관찰하였다. 놀랍게도 이 영역은 아무것도 하지 않자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특히 테스트가 끝나고 실험 참가자가 과제의 집중을 멈추자, 이 영역의 활동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라이클은 이 사실이 감전이라듯 당한 듯 충격이었다. 예상과 달리 두뇌는 정신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그 활동을 더욱 활발했던 것이다. 이 같은 신경 활동의 기묘한 특성을 두고 라이클은 '디폴프 네트워크'라 불렀으며, 이 네트워크는 우리가 어떤 특별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떠오르는 대로 생각의 물결을 따라갈 때 작동하는 특징을 보였다.

이번 글에서는 디폴트 네트워크의 신기한 비밀를 알아 보겠다. 그리고 디폴트 네트워크란 신비한 작용이 가져다 주는 엄청난 선물인 세런디피티의 원리에 대해서도 알아보겠다.  

 

 

디폴트 네트워크의 특징들


라이클이 디폴트 네트워크에 대해 발표한 이후, 과학자들에게 계속되는 의문점이 있었다. 왜 두뇌가 무의식 상태에서 더 활성화될까 하는 점이다. 그 대답은 디폴트 네트워크가 어떤 상황에서 활동하는지 분석함으로 밝혀질 수 있었다. 연구 결과, 디폴트 네크워크는 하루 일과 중에 긴장을 풀고 몽상을 즐길 때뿐만 아니라, 잠을 자는 동안이나 의식불명 상태의 환자, 심지어 원숭이에게도 일어나는 것으로 관찰되었다.

 

그리고 디폴트 네트워크를 감당하는 뇌의 영역은 뇌졸중에 걸릴 위험이 아주 적은 곳이며, 혈액순환이 왕성히 이루어지는 곳이다. 이는 디폴트 네트워크 영역이 분명히 생각기관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수면이나 몽상 혹은 의식불명 상태에서는 두뇌에 대한 외부의 자극이 없기 때문에 내부에서 무언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아무런 목표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무언가 의도적인 생각을 할 때보다 더 많은 두뇌 영역의 활동이 일어난다는 사실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번쩍하는 깨달음을 설명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외부에서 아무런 자극이 주어지지 않았음에도 돌연 좋은 생각이 번쩍하고 떠오르는 것은 두뇌가 저장해둔 '내면의 지식'이라는 보물을 꺼내놓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의식의 차원에서 하는 생각은 언제나 익히 알고 있는 범주에서만 일어나는 반면에 우리의 생각기관에는 인류가 진화를 거치면서 배운 모든 지식이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스쳐 지나가다 취했던 지식, 우연한 것, 오래전에 잊고 있었던 것 등이 잠재의식 안에 모여져 있다가 필요할 때 떠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두뇌 연구가인 울프 징가는 "두뇌는 저 혼자서 기가 막힐 정도로 잘 논다. 말하자면 두뇌가 자기 자신 안으로 산책을 하도록 내버려두는 게 상책이다"라고 했다. 물론 천재적인 착상에는 집중적인 연구와 고민이 따른다. 그러나 심각한 고민을 한다고 풀리는 문제는 별로 없다. 그보다는 두뇌에 환기를 시켜주고 디폴트라는 무의식의 지혜에 맡겨두는 게 훨씬 현명한 선택이다.

 

 

세렌디피티 원리


생물학자이자 두뇌 연구가인 게르하르트 로트는 "합리적이고 의식적으로 계속 문자와 씨름하라. 그러나 결정은 미루어두자. 더 이상 신경쓰지 말고 그 문제를 베개 삼아 잠을 자도록 하자. 그럼 대뇌피질에 자리한 무의식의 직관이라는 네트워크가 당신을 위해 나머지 일을 처리할 것이다."라며 디폴트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바로 이런 천재성의 원리를 '세렌디피티 원리'라고 한다.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은 약 50년 전에 '일부러 찾은 것은 아니지만 이론적으로 준비작업을 한 두뇌에 떠오른 우연이지만 중요한 깨달음'을 두고 '뜻밖의 운 좋은 발견(serendipity)'이라는 뜻으로 이를 세렌디피티 원리라 말했다.

 

세렌디피티 원리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는 포스트잇 메모지의 발명이다.

1968년 화학자 스펜서 실버가 3M사를 위해 새로운 슈퍼 접착제를 만들어냈을 때 나온 것은 그저 끈적거리는 덩어리였을 뿐이다. 이 접착제는 모든 표면에 잘 붙기는 했지만, 그 대신 쉽게 떨어져 나갔다. 이 접착제를 바른 보드판을 팔았으나 시장의 반응이 신통치 않자 이내 상품은 자취를 감추었다.

마찬가지로 3M에서 일하던 아서 프라이는 교회 성가대에서 찬송을 부르다가 자꾸 악보에서 떨어져 내리는 책갈피 때문에 짜증이 났다. 이때 프라이는 번쩍 실버가 만들어낸 접착제가 떠올렸다. 프라이는 실험실에서 잠자고 있던 접착제를 가져다가 작은 쪽지에 발랐다. 포스트잇이 발명된 순간이었다.

1980년 이 메모지는 시장에 나왔고, 1년 뒤 3m사는 이 상품을 '최우수 신제품'으로 치켜세웠으며, 프라이는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세렌디피티 원리는 열린 자세로 접근할 때에만 천재적인 창의성이 가능하며, 강제한다고 되는게 아니란 점을 알려준다. 우연과 자발적으로 떠오른 영감은 그 어떤 전략이나 비지니스 계획으로도 얻기가 불가능하다. 이러한 세렌디피티 원리를 원하는 사람은 특정한 성공에 집착하기보다는 될 수 있는 한 열린 감각으로 세상을 두루 살피는 쪽이 좋을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