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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의미있는 일상

촌지를 주는 부모의 심리는, 내 아이가 미덥지 않아요

 

 

촌지를 주는 부모의 심리는, 내 아이가 미덥지 않아요

 

 

아들녀석이 집에 오자 마자 식탁위에 있던 홍삼을 집어든다. 그 홍삼은 지난 일요일에 딸래미가 단축 마라톤대회에 나갔다가 추첨을 통해 받아 온 상품인데 가족들 먹으라고 꺼내 놓은 것이다. 1회용으로 포장된 것인데 그 중 몇 개를 꺼내더니 내일 학교에 가져간다고 한다. 스승의 날이라 선생님께 선물로 드린다고.

 

'아! 그러고보니 내일이 스승의 날이구나'

"반에서 아이들이 돈 안 걷어?"

 

매년 천원씩인가 걷어서 꽃 사고 간단한 선물을 사서 드리거나 먹을거 사서 선생님과 같이 먹거나 했다고 들은 것 같다. 고등학교 입학 후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고 말해주지도 않아서 기억도 안 난다. 딸래미는 여학교라 그런지 편지 쓰고 꽃 포장하고 나름 애쓰는 것 같았는데 이 녀석은 남학교라 그런지 잔정이 없다.

 

어쨌든 홍삼 몇팩을 포장해서 드릴라고 한다기에 

"1 박스는 해야지, 몇 팩이 뭐냐?"

"원래 소박한 선물이 감동적이야."

하긴 무뚝뚝한 남자애가 멋쩍게 내미는 홍삼 몇 팩이 드라마처럼 눈에 그려져 그럴수도 있겠구나 싶어 간단한 편지라도 써서 같이 드리라고 말했다. 

 

 

 

올해만 지나면 둘 다 대학생이라 스승의 날에 나까지 신경 쓸 일은 없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뉴스에서 촌지가 어린이집 교사에게도 주는 사례가 있어 어린 아이를 둔 부모들도 스승의 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씁쓸한 소식이 들린다.

 

 

 

부모들이, 특히 엄마들이 선생님에게 촌지를 주는 학년을 보면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가 가장 많을 것이다. 촌지를 주는 이유는 감사의 이유등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내 아이를 잘 봐달라는 이유가 가장 많을 것이다.

친척 중에 초등학교에 재직하셨던 분이 계시다. 지금은 정년퇴직을 하셨는데 20년전 쯤 주로 저학년 담임을 하셨던 것 같다.

 

연히 우리 아이가 입학할 때쯤 가족 모임에서 뵙게 되어 촌지에 대해 여쭈니 솔직히 촌지를 받은 아이는 눈에 띄고 신경을 쓰게 된다고 하셨다. 게다가 금액에 따라 차등을 두게 된다는 말까지 하셨다. 친지인지라 황당해도 듣고 있었지만 말씀하시는 내내 그 분이 삐딱하게 보였다.

 

 

 

그리고 선생님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거라는 말을 엄마들을 통해서도 듣게 되었고 딸래미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결국 나도 촌지를 줘야 하나 고민되었지만 촌지는 못하고 내가 꽃을 사고 딸래미가 편지를 써서 아이 손에 들려 보냈다. 하지만 이것도 초등학교 2학년까지 였고 3학년쯤 되니 스승의 날에 반 아이들끼리 돈을 모아 교실을 꾸미고 깜짝 파티를 하는 것 같았고 그 이후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

 

아이들을 키우며 보니 촌지를 주는 엄마들의 마음이 한 편 이해되기도 한다. 처음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부모의 마음은 내 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할까 염려되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왜냐하면 아직 부모 눈엔 너무나 어리게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믿음이 가질 않는다. 집에서 하는 행동은 영낙없는 응석받이인데 선생님이 엄마처럼 눈여겨 봐 주실까? 그러기엔 아이들 숫자가 너무 많다. 그렇다면 내 아이를 선생님 눈에 띄게 하는 방법은 선생님을 개별적으로 찾아가 부탁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한국 사람들은 부탁을 할 때 말로만 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있어 고가의 선물이나 현금을 주게 된다. 받은게 있으니 신경을 안쓸 수 없을거라는 생각인 것이다.

 

이 말은 친지분의 말을 빌리자면 맞는 말이다. 이렇게 선생님에게 촌지를 준 엄마들은 학년이 올라가도 선생님에게 계속 촌지를 주어야 마음이 편하다. 아이가 제대로 학교 생활을 잘 하고 있는 것이 아이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촌지의 힘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언젠가 주위 엄마들한테 촌지를 목적으로 아이를 괴롭히는 일부 몰지각한 선생님도 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그것은 일부일테고 (이렇게 말하면 저학년 엄마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부분이라고 우긴다) 엄마의 불안한 마음때문에 아이를 믿지 못해 돈을 들고 가서 아이를 잘 봐달라고 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아이들은 엄마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생각도 깊고 믿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