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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의미있는 일상

꿈이어서 정말 다행이야

 

 

꿈이어서 정말 다행이야

 

 

부부의 날 아침 남편과 아이들이 모두 나가고 쇼파에 잠깐 기댔는데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아들이 부르는 소리에 일어났는데  

"너 아직 학교 안갔어? "

 

쇼파 뒤에 있는 시계를 보느라 고개를 돌리니 9시 40분 , 동그란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니 심각한 표정으로

"아빠가 이상해?"  이건 뭔소리인가?

아까 다들 나갔는데 아빠가 왜 집에 있어 생각하며 방안으로 들어가니 남편이 옷장 앞에서 버스카드를 만지작거리며 의미없는 미소를 짓고 있다.

 

 

 

한 눈에 봐도 이상해 보였다.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듯 멍하다가 아들에게 얼른 학교 가라고 떠밀다시피 내보내고 남편에게 다가갔다. 어깨를 툭툭치니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버스카드만 바라보며 연실 웃는다.

'머리에 문제가 생겼나보네. 지금이 몇시지?'

 

9시 45분, 그때부터 내 머리가 선풍기처럼 돌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연락이 올지 모르니 일단 내가 먼저 연락하고 어찌해야 할지 생각좀 해보자 하고 남편의 전화기를 찾으니 주머니에 없다. 내 전화기에도 남편 번호만 있지 회사번호는 없는데...

 

남편 전화기로 전화를 걸어 소리를 통해 전화기를 찾기 위해 번호를 누른 후 나는 곰곰히 생각했다.

'일단 몸이 아파서 결근한다고 말하자. 다음엔... 뭘하지... 오늘 하루 그냥 놔둬야하나?.....

아님 병원에 가서 정밀진단을 받아야 하나? ...정말 머리에 이상이 있다고 나오면 어쩌지?.....

그래도 병원에 가보는게 좋을거야.... 그런데 저 사람이 왜 갑지기 이런 증상이 나타난거야?  

말못할 스트레스가 많았나?  만약 진짜 진단을 받는다면 이제 어쩌지? .....

아이들은 다 컸으니 특별히 돌볼 일은 없고 다시 내가 나가 돈을 벌어야 하겠구나 ....

나는 전문직이 아니라서 남편만큼 월급 받기는 힘든데 그 돈으로 살 수 있을까?.....

그런데 저렇게 된 남편을 혼자 두고 나가도 될까?.....

병원에 입원시켜야 하나 아니면 누군가에 맡겨야 하나? 낮시간 동안 돌봐주는 곳이 있을까?.....

두렵다....지금 당장 내 앞에 벌어진 일들이 나는 두렵고 무섭다.....'

 

전화기는 어딨는지 소리가 나지 않고 전화기를 붙들고 나는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며 생각에 생각을 하고 또 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게 꿈이라면..'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꿈이라면 빨리 깨야 한다고 숙였던 고개를 번쩍 들면서 눈도 크게 떴다.

 

♣ 

 

나는 쇼파에 앉아 있었고 긴기민가 하는 정신을 차리다가 얼른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보았다.

시계는 9시 5분이었다. 꿈이다!

제일 먼저 방에 들어가니 아무도 없다. 아들 방도 열어보니 아무도 없다.

머리 속에 새겨진 9시 40분의 시계가 또렷해 다시 보니 여전히 9시 5분을 가리키고 있다. 기분이 묘하다.

 

 

 

매일 꿈을 꾸지만 이런 꿈은 정말 처음이다. 다시 쇼파에 앉아 꿈을 되새겨 보았다. 남편의 모습이 너무나 또렷했고 당시 나의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너무니 생생해서 소름이 돋으며 기분이 아주 나빴다.

꿈을 매일 꾸다시피하니 무슨 꿈을 꾸었는지 아침 나절이면 다 잊거나 생각이나도 별로 의미를 두지 않는데 이번 꿈은 너무나 생생해서 잘 잊혀지지가 않는다.

 

꿈에서 남편의 전화기를 찾기 위해 전화를 거는 잠깐 동안 내 머리속에서 살아나던 여러가지 생각들이 순서도 흐트러지지 않고 고스란히 생각 나니 기분이 아주 좋지 않았다. 꿈 속에서의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들이 아직 채 가시지 않고 하루 종일 나를 붙들었다.

'꿈이어서 정말 다행이다.'

 

♣♣

 

저녁에 퇴근한 남편에게 말하니 한바탕 웃으며 어떻게 꿈을 영화처럼 꾸냐고 한다.

항상 결말은 없는 이야기처럼 꿈을 꾸지만 악몽은 악몽대로 아닌 꿈은 아닌대로 쉽게 잊혀지는데 이번 꿈은 아직도 그 여운이 계속 남는다. 만약 남편이 나와 처지가 바뀐 꿈을 꾸었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것이 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