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한 그녀의 계획

 

 

1995년 겨울, 둘째를 낳고 같은 병실에서 만난 산모인 그녀는 나와 동갑이었는데 그녀는 첫아이을 낳았다. 시어머니께서 큰애를 봐주시고 친정 엄마는 친정 조카들을 보시느라 나는 병실에 혼자 있었다. 수술 후 일주일 정도 입원을 하는 동안 동갑내기 그녀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고 간호를 위해 함께 있던 그녀의 친정 엄마와의 대화를 본의 아니게 듣게 되는바람에 나는 그녀의 치밀한 계획(?)을 알게 되었다.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학원을 인수해 본인이 수학강의를 하며 학원을 운영하다 출산을 하게 되었다는 그녀는 전화를 통해 매일 학원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일정을 체크한 뒤 지시사항을 전달하곤 했다.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보습학원이었는데 강사를 하다가 인수를 했다고 한다.

 

어린 나이지만 전화를 통해 일을 지시하는 목소리에는 카리스마가 있었고 수첩을 보며 체크하고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등 그녀는 한시도 가만 있지를 않았다. 친정 엄마와의 대화를 들으니 학원 특성상 오후부터 강의를 해야하니 오후에 아기를 돌보는 일은 남편이 하기로 했다고 한다.

 

친정 엄마가 따로 일을 하셨었는데 지금은 그만두고 쉬고 계신 것 같았다. 시어머니는 시골에 계셔서 아기를 봐주실 형편이 아니었다. '친정엄마가 가까이 사시고 집에만 계시는데 오후에 잠깐 봐주실 수도 있는데 왜 도와주시지 않을까?' 의아했는데 그 과정에는 그녀의 영리한 계획이 숨어 있었다.

 

 

일단 친정 엄마가 일을 그만두고 쉰다는 사실은 사위에게 비밀로 하라고 말한 후  퇴원하면 아기를 당분간은 남편 퇴근까지는 그녀가 돌보고 오후 6시30분 부터는  남편이 보는 걸로 얘기를 해놨으니 당분간은 애기를 엄마가 돌보지 않아도 된다.

친정 엄마가 어떻게 회사가  매일 정각 6시 30분에 끝나냐고 하니 그렇게 둘이서 애기를 데리고 고생을 좀 하다가 친정엄마에게 도움을 청할테니 마지못해 들어주는 걸로 하라고 엄마에게 지시(?)한다. 그래야 애 아빠도 애기 보는게 어렵다는걸 알테고 장모가 봐주더라고 고마움을 느낄거라고 처음부터 그냥 봐주면 힘든 줄도 모르고 당연하다고만 생각할거라고 한다.

 

대단한 그녀이다. 어찌 저런 생각을 하고 계획을 세울 수 있는지 감탄스러웠다. 그녀의 친정 엄마가 애기가 고생하겠네 걱정했더니 이 정도로 애가 어떻게 되지 않으니 걱정말라고 오히려 엄마를 안심시킨다. 이 사실을 알기 전에는 매일 병원에 들렀던 그녀의 남편을 자세히 보지 않았었는데 알고나서는 그녀의 남편이 오면 자꾸 얼굴 표정을 보게 되었다.

 

지금은 이쁘고 똑똑한 아내가 사랑스러운 아기를 낳아 이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머지 않아 행복한 얼굴은 일그러지겠지. 나는 첫 아이를 키워봤기 때문에 맞벌이 부모가 아기 키우는게 얼마나 힘드는지 알고 있었다.

 

그녀도 이제 엄마이기에 힘들겠지만 고의적으로 남편을 조금 더 힘들게해서 장모님에게 아기를 봐 달라고 통사정을 하게 될 그녀의 남편을 생각하니 큰 비밀을 알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그녀의 생각이 맞다고도 생각했다. 아기를 시댁에 맡기든 친정에 맡기든 아기를 돌보는 일이 얼마나 힘드는 일인지 알고 맡기면 그 고마움은 더 크게 느껴질 것이다. 이게 그녀가 원하는 목적일게다.

 

 

 친구 중에 맞벌이 하느라 애를 친정 엄마가 돌봐주셨는데, 애를 오전에 친정에 맡기고 오후에 데리고 왔었다고 한다. 여름 어느 날 애가 더웠는지 잠을 안 자고 계속 울었나보다. 잠못들기는 친구나 남편이나 마찬가지인데 우는 애를 업고 거실에서 달래려니 남편이 자다가 나와 "도대체 낮에 애를 어떻게 보셨길래 애가 이래?" 라고 짜증을 냈다고 한다.

 

한 마디도 안하고 애를 업고 나와 잠을 재운 뒤 아침 일찍 애하고 남편하고 두고 몰래 출근을 했다고 한다. 친정 엄마한테는 오시지 말라고 전화드리고. 이후에 친구 남편이 어떻게 애를 봤는지는 듣지 못했지만 안 봐도 뻔하다.

 

'애기 볼래? 밭 맬래?'하면 밭 매는게 더 편하다는 걸 보면 애 보는 일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 때 그녀의 계획대로 그녀의 남편이 애기보느라 고생하다가 장모님에게 통사정을 했을지는 모르는 일이나 그녀의 계획이 성공적으로 실현되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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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logIcon 착한연애 2012.06.04 12: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야 대단한데요 앞을 내다 볼줄 아는 현명한 사람이군요

  3. BlogIcon 코리즌 2012.06.04 13: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린아기 돌보는 것 정말 힘들고 어려워요.
    우리 애들 어렸을때 잠시 보니 정말 땀 흘리며 일 하는 것이 더 좋아요.

  4. BlogIcon 이바구™ - 2012.06.04 14: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혜롭고 현명한 새댁이네요.

  5.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06.04 14: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저도 두아이 잠깐, 잠깐씩 보는 것도 힘들어 쩔쩔 매는 아빠인데..
    현명하네요.^^

  6. BlogIcon 소춘풍 2012.06.04 15: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계획은 좋지만,,,, 남편입장에서는 어떨지요~ ^^;;

  7.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06.04 16: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를 돌보는 어려움 때문에 생긴 일이네요
    잘 보고 갑니다

  8. BlogIcon BAEGOON 2012.06.04 16: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친구분 대단하시네요... 역시 선생님 +_+ 남편분도 많이 느낄것 같습니다 ㅎㅎ
    흥미로운 이야기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

  9. BlogIcon 메리앤 2012.06.04 16: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히힛, 치밀하네요. ^^;
    아이 키우는 것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공감이 되겠네요. :)

  10.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06.04 17: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전체 맥락이 이해가되네요.
    맞벌이도 참 힘들어요. 하지만 앞으로는
    아이를 부모에게 넘기지 않는게 정착되었으면 해요.ㅎ
    노년에는 쉼을 보장해주어야 하는데..현실은 참 아니구요.
    뭔가 방법이 나왔으면 하네요.

  11. BlogIcon 여행쟁이 김군 2012.06.04 17: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혜로운 글 잘 보았습니다.^^
    날씨가 많이 더운데, 더위조심하시구요.
    즐거운 하루 되세용~

  12. 자유투자자 2012.06.04 17: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레뷰추천했고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13. BlogIcon 비너스 2012.06.04 18: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넝굴당 보면서도 임신, 출산 육아는 쉽지 않은거구나 생각이 들었는데 ㅜ 참 어렵네요 ㅜ

  14. BlogIcon 하늘다래 2012.06.04 20: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의도적이긴 하지만, 좀 귀엽다는 생각도 드는걸요? ^^
    왠지 남편분이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직장 나가서도 고생,
    집에와서도 고생,
    앞으로 장모님이 봐주시니 눈치보느라 또 고생 ㅎㅎ

    뭐, 봐주시는건 당연히 너무너무너무나 감사한일이지많요.^^

    하지만,
    전 그런 고생도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

  15.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06.04 2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갑니다..
    자주놀러올게요 ^^

  16. BlogIcon 신기한별 2012.06.04 22: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임신 출산 양육문제는 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17. BlogIcon 풀칠아비 2012.06.04 2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솔직히 저는 좀 무서운 생각이 드네요.
    정말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남편에게 꼭 그렇게까지 해야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잘 보고 갑니다. 행복한 한 주 보내세요.

  18. BlogIcon 하결사랑 2012.06.05 00: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짜...저는 이런 생각도 못해보고
    그냥 키워야 하나보다 하고 키우는 중인데...
    그나마 친정 엄마도 넘 멀리 계시고...
    암튼 저역시 성공했길 바랍니다. ^^
    고마움은 힘든 것을 느끼고 난 후에는 몇 배가 되겠죠...아무래도 ㅋㅋ

  19. BlogIcon 돈재미 2012.06.05 04: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그렇게 남편으로 하여금 애보는게 얼마나 힘든지 깨닫게 한다음
    친정엄마게 애를 봐주도록 한다면, 아주 좋은 계획이라고 봅니다.

  20.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06.05 06: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중을 위해서 잘 읽어놔야겟다는 생각이드네요..ㅎㅎ
    어째꺼나 출산, 육아가 쉽지만은 않은거 같애요..ㅠ

  21.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06.05 10: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보는게 쉬울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생각이 바뀌어야 할텐데요. 조카들 잠깐잠깐 봐주는 것도 힘든데 하루종일 보는건 짐작도 못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