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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폭력 해결하려면 청소년기 아이들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학교 폭력 해결하려면 청소년기 아이들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  위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임

 

 

도대체 언제부터 폭력으로 멍진 가슴을 안고 살아가는 아이들이 이렇게나 많았는지 모르겠다.

참을 수 없는 폭력은 아까운 어린 생명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게 하고, 친구들이 놀리는 학교가 싫어 고사리 손으로 학교에 불을 지르게 하고, 피해 학생의 정신적인 충격은 가족과의 대화도 단절시켜 버렸다. 

 

주로 중 고등학교 연령대의 아이들이 폭력사건에 연루되어 가해자도 되고 피해자도 된다.

그런데 왜? 피해 아이들은 말을 하지 않았을까? 왜? 도움을 청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겠지만 여기엔 청소년기 아이들의 특성을 먼저 이해해야 납득이 간다.

 

어린아이에서 몸도 마음도 서서히 어른이 될 준비를 하는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자아가 형성되고 부모로부터 독립하려는 성향이 강해져 계속 아이를 붙잡고 통제하려는 부모나 기성세대들과 충돌을 빚는다. 그 충돌 과정이 물리적으로도 나타나지만 성격에 따라 어른들에게 자신의 문제를 노출시키지 않고 감추려는 경향으로도 나타난다.

 

초등학생 이하의 어린 아이들은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당하면 부모나 어른들에게 말을 해서 도움을 받으려고 한다. 하지만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자아 주체성이 확립되어가는 과정이라 이제는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자신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지 않으려하고 어른들에게 이르거나 고자질하는 것은 유치하다고 생각하는데다 어른들과 학교가 사실을 알고 개입하면 마치 대형 사건에 자신이 연루된 것처럼 여러 시선들이 집중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

 

특히 소심한 성격의 아이들은 행여 이 일이 알려질까봐 표시나지 않게 하려고 애를 쓴다. 혼자 해결하려하지만 폭력 앞에 힘없는 아이는 굴복하고 만다. 사실이 알려지면 더 큰 보복이 있을거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도 아닌 몇년씩 지속적으로 행해지는 폭력에 피해 학생은 몸의 상처는 물론이거니와 정신적인 상처, 자존감이 무너져 자신을 스스로 비하하면서 부당한 폭력에 저항하지 못하고 무력감에 빠져 들게 된다.

 

그런데 반대로 가해학생은 피해학생이 주눅이 들면 들수록 점점 폭력의 강도가 세어진다. 피해학생은 이제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 동물처럼 능욕당하는 모습에 생존의 가치를 상실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고 만다. 만약 피해학생이 폭력 사실을 말해 드러나면 일시적으로 폭력은 멈추지만 아이는 교내 생활에서 완전히 고립되고 만다. 조용히 해결되기를 원하지만 현실은 절대 조용히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때문에 말하기를 꺼려한다.

 

 

성인사회에서 폭력은 경찰의 개입으로 또는 법의 개입으로 도움을 받고 보상을 받는다.  반면에 아이들 사이의 폭력은 부모가 개입을 하든 학교가 개입을 하든 결과는 피해자가 보호없이 가해자와 다시 한 공간에 남게 된다는게 문제이다.

 

 

 

한번 걸렸으니 다음엔 걸리지 않게 더 교묘히 폭력은 행사될 것이고 더 가혹한 폭력적 보복이 두려운 아이는 더 이상 알리지 못한다. 법보다 주먹이 더 가까우니 무섭고 두렵다. 쌍방이 싸운 폭력사건이 아닌 일방적인 폭력사건인 경우는 무조건 가해학생과 피해학생를 떼어 놓아야 한다. 그게 전학이 됐든 퇴학이 됐든 같은 학교에 있는건 안된다.  

 

아들 녀석의 학교는 담배나 교내 폭력은 3번째 걸리면 무조건 퇴학이다. 부모들이 전학을 요구하지만 학교측에서 퇴학으로 처리하는 모양이다. 애들 장래를 위해 너무한거 아니냐고 하지만 학교측의 방침은 뚜렷하다. 전학을 하고 싶으면 2번째 걸렸을 때 하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큰 사건없이 3학년까지 왔는데 선생님들 말로는 해가 갈수록 아이들 성향이 난폭해져서 생활지도 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가해 학생이 학교를 떠나는게 정서상 맞는 말이지만 현실에서는 전학이든 퇴학이든 쉬운 일이 아니다. 가해 학생은 소문이 따라 갈까 두려워 전학을 기피하고 피해 학생은 무서워 도망치듯 가야하는 전학이 억울하고 분하다. 하지만 내가 부모라면 가해 학생이 남아 있는 학교에 두려움에 떠는 아이를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

 

얼마전 방송에서 '수호천사'라는 프로그램으로 교내폭력을 막는 학교의 모습을 소개했었다. 학교나 주변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아이를 보거나 들으면 선생님들께 발신번호없이 '수호천사'라는 이름으로 신고를 하게 했다는 것이다. 시시콜콜한 것까지 신고가 들어오지만 폭력 예방에 효과적이라고 했다. 실제 소위 일진이라고 하는 아이가 인터뷰를 했는데 자신의 행동들이 자주 선생님 귀에 들어가니 여기저기 감시의 눈초리가 느껴져 행동에 제약을 받는다고 했다.

이 방법이 지금으로선 가장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가해학생에겐 심리적인 위축감을 주어 행동에 제약을 주게 될 것이고 피해학생에겐 익명으로 도움을 청하거나 주변의 아이들이 대신 신고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건 폭력사실이 표면으로 떠 올랐을 때 사실을 확인한 어른들의 행동이다. 피해학생의 부모는 절대 자신의 아이 앞에서 격앙된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 그러면 아이는 '내가 문제아구나' 라고 자학하게 된다. 그동안 힘들었을 아이를 다독여주고 위로해 주는 것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대신 피해 아이와 그 부모 앞에서는 강하게 잘못을 물어야 한다. 가해학생도 자신의 잘못으로 부모가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을 봐야 잘못을 뉘우칠테니까 말이다.  

 

요즘은 가해 부모가 제 아이 감싸느라 더 후안무치한 행동들을 많이 한다고 하지만 그건 일부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폭력사태에 대한 학교의 입장도 뚜렷해야 한다. 누이 좋고 매부좋다는 식으로 대충 서로 화해시키고 무마하려고만 해서는 안된다. 교권이 땅에 떨어져 개탄스럽다는 선생님들의 말도 한편 이해되지만 아이들 교육에 적극적이지 않은 무사안일한 태도가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사교육을 따라가지도 못하고 문제가 터졌을 때 도움도 주지 못하고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학교나 선생님에게 무조건 존경심을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는 상황에서 학교는 중립적인 입장이 아니라 선과 악을 판단해 주는 역할을 해야한다.

 

♣♣♣

 

사회가 발전하면서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물질적인 것들은 풍요로워졌지만 정신적으로는 더 황폐해지고 부작용들이 많아지고 있다. 성인들도 견뎌내기 힘들어 아둥바둥하는데 아직 완전치 못한 아이들이야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게다가 본보기가 되는 어른들이 적은 사회환경에서 아이들에게 무얼 가르치려 한들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다.

 

다 떠나서 당장 시급한 문제는 누구의 잘못을 가려내는게 아니라 바로 실행에 옮겨서 혹시나 지금도 친구의 폭력에 하루하루가 지옥같을 아이를 구해 낼 수 있는 당장 실천 가능한 방법을 강구해 내는게 급선무이다.

원론적인 이야기나 근본 대책만 세우느라 시간허비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