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을 보는 창/의미있는 일상

박인수가 부르는 봄비, 삶이 묻어나는 노래

 

 

박인수가 부르는 봄비, 삶이 묻어나는 노래

 

비 오는 오후 한적한 버스를 탔다.

비 오는 날이라 그런지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DJ의 목소리도 가라 앉았고 뒤이어 차 창에 흐르는 비가 마치 눈물인양 흐느끼 듯 부르는 이은하의 "봄비'라는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봄 비 속에 떠난 사람, 봄 비 맞으며 돌아왔네"

 

지금은 한창 여름, 봄이 아닌데도 봄비 노래를 틀어주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비와 너무나 잘 어울려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노래에 빠져 들었다.

 

 

 

 

 

나이따라 변하는 노래취향

 

어릴 땐 가사보다는 멜로디가 흥겨운 노래들을 좋아했었다.

그래서 가사는 몰라도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따라 부른곤 했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 가사가 귀에 들려오기 시작했고 가사를 음미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전문가나 그런건 아니고 그저 얼핏 들리는 한 소절이 마음에 와 닿을 때가 있다.

 

작년 남자의 자격에 나온 청춘 합창단의 노래 '사랑이라는 이름을 더하여'의 가사 중 '모든 순간은 이유가 있었으니'라는 가사가 가슴에 박히듯 말이다.

 

대학교 때 유머감각이 좋은 과 선배가 있었다.

그가 좋아하는 노래는 혜은이의 '당신은 모르실꺼야'라는 노래였는데 가사 중 '당신은 모르실거야'라는 앞 부분 때문이라고 한다.

 

 

 

1980년 5월, 광주 인근에서 중학교를 다녔던 그는 광주사태 때 가족들의 권유로 위험을 피해 야간을 이용, 산을 넘어 인근 친척집으로 도망을 가야했다고 한다. 산 속에서 있다가 날이 밝자 시내로 들어갔는데 그때 스피커에서 이 노래가 흘러 나왔고

 '당신은 모르실거야 ~'라는 가사가

마치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울컥했다고 한다.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어떤 심정이었을까가 짐작되었다.

 

나는 그동안 특별히 좋아하거나 사연있는 노래는 없었고 그저 내 목소리가 저음이라 저음 노래들이 따라 부르기 좋아서 고음 노래보다 좋아했다.  옛날 가수로는 문주란의 노래도 좋아했고 7-80년대는 통기타 가수들 중 저음가수들의 노래를 좋아했다. 

 

목소리가 저음이여서 그랬을까 노랫말은 밝고 경쾌하기보다는 우울한 감성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김정호의 노래가 그랬던 것 같다. 김정호의 노래는 나즈막히 혼자 흥얼거리기에 알맞은 노래들이 많다. 박효신이나 김동률의 노래도 좋아하고 장재인이나 이하이의 목소리도 좋아한다. 

 

 

박인수 봄비, 삶이 묻어나는 노래

 

그러다 얼마 전 방송에 나온 박인수의 '봄비'를 듣고 소울이라는 장르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박인수라는 가수를 잘 몰랐지만 목소리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의 특이한 가창력은 내 맘에는 들지 않아 찾아 듣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우연히 방송에서 그가 연고자 없이 요양원에서 홀로 지내는 모습과 우여곡절 끝에 가족과 재회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의 얼굴은 처음 보는데 그가 정말 한때 인기가도를 달렸던 가수가 맞나 싶을정도로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까지 망가져 있었다.

 

거동도 불편하고 정신도 온전치 못하고 발음도 어눌한 모습에 그저 이웃집 불쌍한 노인네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보았다. 간간히 젊었을 때 목소리로 들려지는 '봄비'라는 노래를 들으며 이젠 저 노래를 결코 할 수 없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방송 말미, 녹음실에서 그는 감정을 가다듬고 '봄비' 부르기에 도전했다.

"이슬비 나리는 길을 걸으면~"

노래를 듣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으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예전  목소리와 감성을 그대로 재현했다. 고음 부분에서 힘들어 하면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했고 본인도 감회에 젖어 눈물을 글썽거렸다.

 

절대 예전 목소리로 노래하지 못할거라는 나의 짐작은 빗나갔지만 그가 지금 어떤 마음으로 노래를 하고 있는지는 충분히 전달되었다. 그 이후 나는 이 노래를 자주 흥얼거린다. 가사가 와 닿는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목소리의 가수도 아니었지만 본능적으로 노래하고 싶어하는 그 마음이 전달되어 감동을 받았다.

 

사실 그가 지금 부르는 이 노래는 대중에게 감동을 전달하려는 목적보다는 자신 스스로에게 주는 격려와 가족들에게 주는 고마움의 표현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하거나 실연의 아픔을 겪게 되면 대중가요 가사가 전부 자기 마음을 대변하는 가사들인양 들리게 된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그런것도 같다.

 

이젠 사랑을 노래하는 가사보다 인생을 노래하는 가사가 귀에 들리고 노래를 부른는 가수의 삶이 보여지는 노래가 좋아지는 걸 보면 노래취향도 나이를 따라 변해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