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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의미있는 일상

역지사지, 세대간에도 필요한 지혜

 

 

역지사지, 세대간에도 필요한 지혜

 

20대 초반,  엄마에게 많이 듣던 잔소리 중 하나는 '휴지 아껴써라' 와 '샴푸 좀 아껴써라'는 말이었다.

 

지금이야 휴지의 질이 좋아져 조금만 잘라도 쓰기에 불편하지 않았지만 예전엔 질이 좋지 않으니 조금 자르면 쓰기에 불편했다. 조금 더 자르다가 엄마에게 걸리면 "휴지로 이불해서 덮을래!"라고 고함을 치셨다.  

 

 

딸에게서 보는 데자뷰

 

샴푸는 머리숱이 남들보다 많아서 조금 더  사용해야 거품이 잘 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더 쓰는건데 엄마는 너무 많이 쓴다고 하셨다.  이것 외에도 몇가지 더 엄마의 지속적인 잔소리를 들었지만 귀담아 듣고 고친건 별로 없는 것 같고 겨우 이런걸 가지고 잔소리를 하시나 오히려 내가 더 짜증을 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우리 아이들이 예전 내 모습과 비슷하다. 물 틀어놓고 이 닦고 휴지 많이 쓰고 치약도 끝까지 쓰지 않고 새것만 찾는다. 볼 때마다 잔소리를 하지만 물 잠그려고 했다 치약이 짜도 안 나온다 휴지를 이만큼 잘라야 손에 안 묻는다 하면서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아무래도 잘못된 유전자가 내려간 모양이다. 어째 안닮아도 되는건 잘 닮는지 모르겠다.

 

 

절로 나오는 아이구야!

 

예전엔 어른들이 움직이실 때마다 "아이구야"라는  말을 하시면 도대체 얼마나 아프길래 저런 말을 하실까? 궁금했었다. 특히 버스나 지하철에서 의도적이고 조금은 과장섞인 "아이구 다리야"라는 말을 들으면 그저 자리 양보 해달라는 표시정도인가보다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그러고 있다. 앉았다 일어나면 자동으로 "아이구야" 소리가 나온다. 통증이라기보다 '저림'같은 느낌이 다리에 전해지면서 의도하지 않아도 입에서 자동반사식으로 '아이구야'소리가 나오는 것인데 이 말이 요상한게 내 뱉고 나면 좀 덜 아픈것 같다. 마치 역도선수들이 역기를 드는 순간 괴성을 지르는 것과 같다고 봐야하나? 아무튼 "아이구야'라는 소리는 저절로 나오는 것이지 의도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세대간에도 필요한 역지사지

 

결혼 전 오빠네 집에서 얹혀(?) 살던 지인은 어느 날 새언니가 '아가씨, 물은 드실만큼만 따라 드세요. 너무 많이 따르면 버리게 되서 아깝잖아요.' 하더란다. 정수기가 없던 시절 보리차를 끓여 먹던 때였는데 물을 마시고 조금 남은 걸 버렸는데 새언니가 그걸 보더니 한소리를 했다고 한다.

 

당시엔 별걸 다 잔소리한다고 기분나빴는데 이제 살림을 해보니 아이들이 쓸데없이 컵에 한가득 물을 따르고 한 모금 마시고 버리는걸 보면서 예전에 새언니가 어떤 마음이었은지 이해가 간다고 했다.

 

 

 

20대를 겪어보지 않은 10대는 당연히 20대의 삶이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그 나이가 되었을 때 또는 그 입장이 되어봐야 이해가 가능하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이미 나는 10대부터 30대를 지나쳐 왔고 그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떨땐 그들이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다는 점이다. 

 

잠시 생각해보니 아마도 그건 '난 이미  예전에 다 겪은 일이야' 라고 생각하는 자만심같은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살아 온 10-30대의 삶이 정답이 아닐진대 나와 다르다고해서 이해할 수 없다고 무시해서는 안되는데 말이다.

 

점점 나이를 먹을수록 마음 속 그릇도 커져서 모든 것을 다 담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