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국호, 조선이 아니라 화령이었다면

 

예전에 작성한  '[링크]대한민국이란 국호는 언제 정해졌을까'에서 대한민국 국호가 결정된 배경에 대하여 포스팅한 적이 있다.

 

1919년 4월 10일, 중국 상하이 조계(외국인 거주지)인 진선투루의 허름한 집에 모인 독립지사 29명은 밤새워 논의를 한 끝에 11일, 임시정부 수립이 결정되었으며, 이 자리에서 나라이름(국호)도 정하였다. 이처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는 독립지사들의 뜻을 모아 결정되었던 것이다.

 

보통 자식의 이름을 짓는 데도 온갖 정성을 다하는게 인지상정인데, 하물며 나라의 이름 즉 국호를 정하는 일의 중요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에서 국호를 짓는데 떳떳하지 못한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조선과 태조 이성계이다. 

 

 

조선과 화령

 

이성계는 새 왕조의 기틀이 어느 정도 갖추어지자 정도전, 조준 등의 건의를 받아 국호를 바꾸기로 결심하였다. 결국 그 역할은 정도전이 맡게 되었다.

 

그런데 정도전은 국호를 정하는데 한가지 걱정이 되는 점이 있었다. 국호를 정할 때 명나라의 의견을 무시한채 독자적으로 결정하기가 큰 부담이 되었다. 왜냐하면 명나라에서는 아직 고려에 이어 새로운 왕조를 세운 이성계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조 1년(1392년) 이성계는 즉위한 바로 다음 날 명나라로 사신을 보냈다. 새 왕조를 승인하는 명나라 황제의 조서를 받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해 11월 명나라 태조 주원장으로부터 국호를 지어 올리라는 지시를 받게 된다.

 

논의 끝에 조선과 화령이라는 두 개의 이름이 후보에 올랐다.

 

조선은 단군 조선, 기자 조선, 위만 조선에서 따온 것이다. 역사적인 맥을 있는다는 의미에서 정통과 명분을 지닌 이름이었다. 그리고 아침 조(朝)에 새로울 선(鮮)이니, 새로운 아침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름이었다. 반면에 화령은 이성계가 태어난 현재의 함경남도 영흥의 옛 이름이었다.

 

 

 

조선의 시작은 사대주의 의식

 

이성계가 보낸 두 개의 국호 중에 주원장은 조선을 선택하며 조칙을 내렸다.

 

동방의 족속 국호로는 조선이 좋은데 이는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이름이다.

이 이름을 본받고 하늘의 뜻을 받들어 백성을 다스려 후손 대대로 번성하게 하라. 

 

과연 주원장은 왜 조선을 선택하였을까?

 

국호를 조선으로 결정하는데는 조선과 명나라의 시각은 크게 달랐다. 조선에서는 처음부터 단군 조선과 기자 조선의 문화와 전통을 동시에 계승한다는 의도였지만, 명나라는 기자 조선만을 의식한 채 조선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명나라는 『한서지리서』에 등장하는 은나라 때 현인인 기자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기자가 조선으로 망명하여 백성을 교화시키자 주나라 무왕이 그를 조선의 제후로 봉하였다. 그래서 주원장은 조선을 중국의 제후국이라 폄하하여 '조선'을 국호로 선택한 것이었다.

 

 

 

그런데 정도전은 조선이라는 국호에 내심 만족하였다. 정도전 역시 주나라 무왕이 기자를 조선의 왕으로 책봉했던 일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정도전은 무왕을 주원장으로, 기자를 이성계로 비유해 만족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정도전은 태조 3년 태조에게 지어 올린 『조선경국전』에서 한심한 본인의 견해를 피력하였다.

 

지금까지 국호가 일정하지 않았는데, 신라는 김.박.석의 세 성씨가 일컫은 것이고, 백제는 온조가, 훗날의 후백제는 견훤이 정한 것이다. 또한 주몽은 궁예를 대신해 고려라는 국호를 사용했지만, 이 모두 한 지역을 마름대로 차지한 채 중국의 명을 받지 않고 스스로 명분을 세워 침략한 결과이다.

 

 

▲ 삼봉은 정도전의 호이다. 충북 단양의 도담삼봉을 의미한다

 

결국 국호는 있었지만 무슨 근거로 나라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그러나 기자만은 주나라 무왕의 명을 받고 조선의 왕에 봉해진 것이다.

 

말인즉, 역사상 중국의 선택에 따라 국호가 정해진 것은 조선이 유일하다는 뜻이다.

이 얼마나 수치스럽고 사대주의적 발상인가? 조선의 개국공신이며 정신적 원로였다고 알려진 정도전은 국호를 정하는데 있어서는 사대주의 의식에 사로잡힌 인물이었다. 

 

우리 역사에서 500년을 이어온 자랑스런 조선이었지만 국호만큼은 사대주의적 의식에서 그리고 남의 손에 의해 정해진 것이다. 만약에 화령이라고 정해졌어도 국호를 남의 손에 의해 결정한 사실만은 부끄러운 역사의 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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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하얀잉크 2012.08.26 06: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선이란 국호에 그런 의미가 있었는지는 처음 알게 되었네요.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에 대해서는 알았지만 씁쓸합니다.

  2. 슈라 2012.08.26 06: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즐거운 일요일 되세요...

  3. 2012.08.26 10: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BlogIcon 아디오스(adios) 2012.08.26 14: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쩝 쩝 이 역사적 이야기 안타깝죠... 국호를 정해주는데로 해야한다는....

  5. 하모니 2012.08.26 15: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님아 혹시 친일파임?
    조선이 사대주의에 쩔은 중국의 종속국가라는 일제의 주장과 너무나도 일치하는 생각을 가지고 게시네요.

    당시 명나라의 위세는 유럽의 교황과 같은 위치여서
    명나라의 승인을 받아야 국가를 인정받았지만
    사실상 형식에 불과한거고..
    조선이라는 이름도 이미 기설정된 상태에서
    승인만 받은거죠.
    이런 뒷배경을 잘 모르고 단순히 형식만 보면
    고구려도 북위로부터 작위를 받았으니
    중국의 지방정부라는 동북공정에도 휘말리는 생각입니다.
    당시의 사회상과 국제정세를 좀더 공부하고 조선의 대중국외교관계가 어찌 형성되었는지 생각해보세요.

    • BlogIcon Zoom-in 2012.08.26 18: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당시의 시대 상황이 그랬으니 당연했다는 사고방식이 참 위험하네요. 논리의 전개가 무척 위험하군요.
      중국의 동북공정과 빗댄 말은 더더욱 이해가 안되는 논리군요.(앞 뒤의 논리가 정반대임)

      조그만 지식으로 전체를 일반화하는 사고만큼 위험하고 편협된 것은 없습니다.

      친일파가 어떤건지 다음 글을 한번 읽어보세요.
      http://blog.naver.com/4900789/140166391723

  6. BlogIcon 승현이라 불러줘 2012.08.26 17: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덕분에 공부 하고 가는데요^^
    ㅎㅎㅎ
    역사...씁씁하네요~
    ...
    즐건 주말 되세요^^*

  7. BlogIcon +요롱이+ 2012.08.26 19: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구 갑니다..!!
    남은날도 평안한 하루 되시기 바래요!

  8. 자유투자자 2012.08.26 19: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레뷰추천했고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9. BlogIcon 신기한별 2012.08.26 21: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려까지만 해도 원나라 간섭만 빼면 그럭저럭 독자적으로 나아간가에 비해....
    조선시대에서는 명나라와 청나라라는 빽만 믿고 오랫동안 유지하다가 20세기에 근대화를 제대로 하지 못했죠...
    빽도 빽이지만, 국력을 좀더 키웠어야 했는데 오히려 당파싸움 등등 내분싸움만 잦아지니..

  10. 2012.08.26 23: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1. 안녕하세요 2017.02.08 16: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에 하모니님 말에 동의해요. 친일파냐고 몰아간 건 너무 극단적이었지만요.
    전공 시간에 국호를 조선과 화령 두 가지 선택지를 보낸 것은 사실상 형식을 차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배웠습니다.
    즉, 조선 내에서 이미 조선이라는 것을 정해놓았지만, 하나의 사실상 별 의미 없는 선택지를 형식상 같이 보낸 것이라구요.
    고구려 이야기도 말마따나, 고대사에 보면 고구려나 백제 등도 북조나 남조로부터 작위를 받곤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고구려나 백제가 사대주의적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고, 당시의 형세를 따른 것이라고 해석하듯이, 조선 국호 정하는 문제도 유사한 것 같습니다.
    다만, 중후반으로 갈수록 그 이전보다 조선이 좀더 사대적인 면이 있었다는 것은 맞는 것 같지만요...
    우리가 중국처럼 영토나 세력 면에서 큰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중국의 질서에 겉으로 굴복하는 모습들을 역사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뭔가 확장적이고 정복적인 그런 역사를 기대한다면 다소 굴욕적으로 느껴지고 씁쓸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예전부터 현실이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현실 속에서 나름대로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외교술을 펼치거나, 형식적으로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경제적, 문화적 실리를 챙기거나 하는 방식으로 사대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무조건 우리나라 역사를 자조적으로만 볼 필요도 없는 것 같습니다.
    약간 요즘 말하는 '국뽕'에 취하는? 것 같은 모습도 지양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식민사관의 잔재로서 우리 인식에 여전히 남아있는 우리가 '사대주의적이다'하고 자책, 자조하는 것도 조심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12. 안녕하세요 2017.02.08 16: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것저것 서핑하다가 들어와서 보고 댓글을 달았는데, 달고 보니 상당히 예전에 올리신 글이군요..^^ 뒷북처럼 느껴지실 수도 있지만, 그냥 저의 생각을 한번 남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