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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의미있는 일상

잘못된 내리사랑 사랑, 아무렴 배 아파 낳은 어미의 고통만 할까

 

잘못된 내리사랑 사랑, 아무렴 배 아파 낳은 어미의 고통만 할까

우리 조상들이 아이들 이름을 개똥이나 소똥이등 하찮게 지은 것은 오래 살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고 한다.

의료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때라 병에 걸려 일찍 죽는 아이들이 많았던 때였는데 이를 두고 귀신이 아이들을 잡아가는거라 여겨 귀한 아이임에도 하찮은 이름으로 부르다가 나중에 다시 제대로 된 이름을 지어 주었다는 것이다.

내가 귀히 여기는 것을 귀신이 샘을 내어 빼앗아 간다는 말인데 세상을 살다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 말은 맞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귀한 아들의 죽음

딸 셋을 두고 마지막에 아들을 둔 집, 아버지와 할머니가 어지간히도 아들을 기다렸다는데 4번째로 아들을 낳았다. 그 아이가 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았음은 당연한 일이다. 아들은 낳은 어머니도 오랫동안 못한 숙제를 간신히 시간 안에 끝낸 듯 안도의 함숨을 내쉬었을 것이고 딸들과는 다른 사랑으로 아들을 키웠다.

그렇게 아들은 할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먹고 잘 자라서 대학을 들어갔다. 첫 여름방학에 과 선배들과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아들은 자전거를 아주 잘 탔는데 그 중 초보인 듯한 학생의 뒤에서 안전을 살피며 따라 가다가 대형 트럭이 지나가자 앞서가던 초보학생이 기우뚱 거리며 트럭쪽으로 넘어지려고 할 때 이를 막으려하다가 본인이 그만 트럭 사고로 사망했다.

가족들은 반 실성한 것처럼 정신이 나갔고 특히 할머니와 아버지의 상실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나보다. 아무리 그래도 10달 동안 배 안에 키워 배 아파 낳은 어미의 상처만할까 싶었다. 금지옥엽으로 20년을 키웠는데 그야말로 다 키워 놨더니 그만 훌쩍 가버린 것이다. 마치 누군가 데려간 것처럼 말이다.

우리나라처럼 아들 선호사상이 아직은 심한 나라에서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부모의 심정은 그 무엇으로도 위로할 수가 없다. 특히나 열달 배 아파 낳은 어미의 고통이야 말로 무엇하겠는가.

 

잘못된 사랑의 표현

그런데 할머니와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을 어머니에게 몰아부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밖으로 나돌기 시작했고 할머니는 '자식 잡아먹은 *' 이라며 어머니의 고통에 소금을 뿌려댔다. 안그래도 정신을 차릴 수 없을만큼 고통 속에 있던 어머니는 정말 아들이 자신 때문에 죽은 것은 아닌지 자책하였고 자살을 시도했다. 

할머니나 아버지의 언행으로 볼 때 아들이 태어나기 전까지 어머니의 맘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거라 짐작이 간다. 목숨줄 같은 아들이 죽었으니 어머니에겐 살아있어도 산게 아니었을 터이다.  다행히 딸들에게 발견되었지만 정신과 치료가 필요했다. 할머니와 아버지의 악담(?)에서 격리가 필요했기 때문에 딸들 중 한명이 직장을 그만두고 어머니를 모시고 시골로 내려가 요양을 하기로 했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 했다. 어미가 죽어 땅에 묻혀야 그 아픔이 같이 묻힐려나....

어머니의 몸과 마음이 하루빨리 추스려져 아픔과 슬픔이 흐려지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