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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itorium/Interest

동서양의 드래곤(용) - 파프니르 리비야단 촉음 미르

 

동서양의 드래곤(용) - 파프니르 리비야단 촉음 미르

신화나 전설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용은 친숙한 존재이면서도 성스러운 존재이다. 그래서 용꿈을 최고로 치며 임금님의 얼굴을 용안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용을 신적인 존재로 생각하는 건 동양에서의 얘기고 서양에서의 드래곤은 포악하고 잔인한 괴물로 그려진다.

이처럼 동서양의 신화나 전설 속에 등장하는 용의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서양 문명에 등장하는 드래곤은 태초의 무질서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등장한다. 서양의 드래곤은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모든 재앙의 근원으로 여겼으며 홍수나 비바람, 화재, 기근, 심지어 전염병조차 드래곤이 몰고 온 재앙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세상의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서양의 드래곤은 반드시 정복되어야하는 괴물의 존재로 그려진다. 그래서 드래곤을 무찌르는 영웅과의 혈투는 서양의 신화나 전설 속에서 빠지지 않는 이야기의 소재이다.

그에 반하여 동양의 용은 인간에게 길흉화복을 주는 신성한 존재로 여겼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용의 모습은 중국 한나라 이후 만들어진 『9사설』에 따른 것으로 아홉가지 동물과 닮은 모습을 하고 있다. 머리는 낙타와 비슷하고 뿔은 사슴, 눈은 토끼, 목은 뱀, 배는 대합, 비늘은 물고기, 발톱은 매, 발바닥은 호랑이, 귀는 소와 닮았다고 한다.

이처럼 동서양의 용이 상징하는 의미는 다르기 때문에 각 나라마다 전해지는 용의 전설을 알아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영웅 지그프리트와 파프니르

파프리니는 북유럽 신화와 독일 전설에 등장하는 드래곤이나, 원래 파프니르는 난장이 마법사였다.

그가 용이 된 사연은 재물에 대한 욕심때문이다. 파프니르와 그의 아버지는 뜻하지 않게 많은 보물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그 보물을 가진 자는 불행한 운명이 된다는 신의 저주가 내린 보물이었다. 그리고 저주의 마수는 제일 먼저 파프리니에게 내려졌다. 보물에 눈이 먼 파프니르는 아버지를 죽이고 동생까지 추방한 다음 보물을 동굴 속에 감추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자 그는 마법을 써서 스스로 무시무시한 드래곤으로 모습을 바꾸어 동굴을 감시하였다. 형에게 추방당한 동생 레긴은 대장장이로 변신해 복수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그프리트라는 청년이 제자로 들어왔다. 레긴의 부추김에 넘어간 지그프리트는 레긴이 만든 명검 '그람'을 차고 파프니르를 죽이러 나섰다.

그래도 운이 좋았던지 무모한 지그프리트에게 애꾸눈 할아버지로 변장한 오딘(북유럽 신화의 최고신)이 나타나 파프니르를 처치할 비책을 가르쳐 주었다. 지그프리트는 오딘의 조언대로 숨어서 기다리다 파프니르가 나타나자 온힘을 다해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파프니르가 죽으면서 쏟아낸 피는 지그프리트의 온몸을 적셨다.

그 때 나뭇잎이 그의 어깨에 떨어져 그 부분에만 피가 묻지 않았다. 몸의 다른 부분은 용의 피로 적셔져 강철 같은 피부를 가졌으나 그리스 신화의 아킬레스처럼 단 한 군데의 약점으로 인해 지그프리트는 결국 죽고 말았다. 그런데 그가 죽은 이유도 레긴을 죽이고 보물을 독차지한 결과로 보물의 저주에 의해 비운의 죽음을 맞이 했다. 

 

바다 드래곤, 리비야단

리비야단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바다의 드래곤이다. 리비야단은 태양과 달을 먹어치워 일식과 월식을 일으키고 세상으로부터 빛을 빼앗아가는 무서운 괴물로 등장한다. 탈무드에 의하면 드래곤은 다섯째 날 창조된 생물이라 한다. 원래 하나였다가 암컷은 리비야단, 수컷은 베헤모스로 분리되어 각각 바다 속과 사막에서 살게 되었다.

 

▲ 리비야단과 짝을 이루는 베헤모스

 

그러나 리비야단은 아무도 이길 수 없는 존재가 되자 결국 하느님은 자신이 창조한 리비야단을 용서하지 않고 심판의 날에 그 머리를 두들겨 부순다고 되어 있다. 성서 연구가들에 의하면 구약성서의 리비야단은 당시의 이집트 왕국을 가르킨다고 한다. 유대교 신자들을 박해한 이집트 왕국을 사악한 드래곤으로 비유한 것이다.  

바다의 드래곤 리비야단은 나중에 배를 통째로 집어삼켰다고 하는 북유럽의 크라켄과 혼동되기도 하였다.

 

낮과 밤 그리고 사계절을 주관하는 촉음

동양에서 가장 거대한 용은 『산해경』에 등장하는 촉음이다. 중국 북방에 있는 전설의 종산에 촉음이라는 용이 사는 데 천 리가 넘는 진홍색 긴 몸으로 종산을 휘감고 있으며, 촉음의 모습은 온몸이 붉으며 목위는 인간이며 두개의 눈은 아래로 향하고 있다고 한다.

 

▲ 산해경에 묘사된 촉음

 

촉음은 자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숨조차 쉬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 촉음이 눈을 뜨면 세상은 빛으로 가득차서 낮이 되고 눈을 감으면 밤이 되었다. 또한 촉음이 크게 입을 벌리고 숨을 내쉬면 겨울이 되고 목소리를 내면 열기가 일어나 여름이 온다고 한다. 이렇듯 촉음은 계절이나 기후와 같은 대자연의 섭리를 주관하는 신으로 묘사되었다.

촉음과 비슷한 신은 광대한 중국 땅 여기저기에 존재하는데, 장미산에는 촉룡, 승산의 축융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용, 미르 

우리나라는 용을 미르라는 고유어로 불렀다. 중국의 역대 황제가 용의 혈통을 이어받았다고 하는 것처럼 조선의 역대 군주들을 칭송한 서사시에도 '용비어천가'란 제목이 붙어있다.

특이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발톱의 갯수로 용의 등급을 표현했다. 발톱이 다섯 개면 '오조룡'으로 황제를 뜻하고, 발톱이 네 개면 '사조룡'으로 황태자, 세 개면 '삼조룡'으로 왕세손을 가리킨다. 경복궁 근정전에 있는 왕좌의 천장에는 예외적으로 발톱이 일곱 개인 '칠조룡'이 그려져 있다.

 

▲ 경복궁 근정전의 칠조룡

 

『삼국유사』의 만파식전 설화에도 용이 등장한다.

신라 제31대 신문왕은 아버지 문무왕을 위해 동해변에 감은사를 지어 추모하였다. 죽어서 해룡이 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이 합심하여 용을 시켜 동해의 한 섬에 대나무를 보냈다.

이 대나무는 낮이면 갈라져 둘이 되고 밤이면 합하여 하나가 되었다. 왕이 기이하게 여겨 용에게 물어보았다.

용이 답하기를 "비유하건대 한 손으로는 어느 소리도 낼 수 없지만 두 손이 마주치면 능히 소리가 나는지라, 이 대나무도 합한 후에야 소리가 나는 것이요. 이 성음의 이치로 천하의 보배가 될 것이다."

왕이 곧 이 대나무를 베어 피리를 만들어 부니 나라의 모든 걱정 근심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 피리를 '만파식전'이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