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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itorium/History

기울어가는 대가야의 한을 담은 우륵의 가야금 열두 곡조

 

기울어가는 대가야의 한을 담은 우륵의 가야금 열두 곡조 

가야금은 대가야의 왕인 가실왕이 우륵를 비롯해 많은 예술가와 장인들을 불러모아 만든 악기이다.

그 중 우륵은 가장 공로가 컸으며 가야금에 대한 애착도 남달랐다. 하지만 가야국은 국운이 다해 신라에 의해 멸망했다. 기울어가는 나라를 바라보며  우륵은 대가야의 아름다운 사계절을 음악에 담았다. 

 

망국의 한이 서려있는 가여금 열두 곡조

대가야가 멸망하고 나서 우륵은 신라 진흥왕을 위해 가야금 연주를 하게 되었다.

감명을 받은 진흥왕은 그에게 3명의 청년을 보내 제자로 삼아달라고 했다. 우륵은 그들에게 가야금을 가르쳤고 몇 년 후 제자들은 스승인 우륵을 위해 가야금 열두 곡조 중 다섯 곡조를 편곡해 스승 앞에서 연주했다.

연주를 들으며 우륵은 속으로 생각했다.

'너희 조국 신라는 새로운 희망이 솟는 나라이니 이처럼 곡조가 신명나고 흥겹구나. 내 조국 가야는 그렇지 못하니 내 곡조는 이리 슬프고 비통한데.....'

하지만 겉으로는 제자들에게 '참으로 흥에 겹고 힘찬 곡조라 듣기에 좋구나.'라고 칭찬의 말을 하였다.

 

변절자로 낙인 찍힌 우륵 

가실왕은 음악을 통하여 대가야의 정치적 통합을 이루고자 하여 가야금을 만들었다. 신라와 연합하여 백제를 견제하려 하였으니 실패하였다. 가실왕이 죽자 정치적 탄압을 피해 가야금을 가지고 신라로 망명했다.

신라 진흥왕은 우륵을 알아보았고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주를 들었으며 신라를 위한 음악을 만들도록 했다. 우륵은 신라와 진흥왕을 위해 음악을 만들었다. 

그러는 사이 대가야는 멸망했고 우륵은 대가야를 버린 변절자의 손가락질을 받았으나 묵묵히 가야금을 이용한 작곡에 몰두 하였다. 한때는 대가야의 사람으로서 왕과 함께 국정을 고민하던 그가 지금은 신라를 위한 음악을 만들고 있으니 어찌 마음 한 켠이 괴롭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 느낌이 그대로 곡조에 드러나니 그의 가야금 열두 곡조는 모두 슬프고 비통할 수 밖에 없다.

 

지난 10월11-12일 양일 동안 고령에서 '대가야 문화예술제'가 성황리에 연주회를 마쳤다고 한다.

이 공연에는 대가야의 지역답게 가야금과 대금, 그리고 통기타와 하방 등 다양한 문화공연이 가을밤을 아름답게 수 놓았다고 한다. 천년도 더 전에 고령에서 처음 가야금을 만들고 슬픈 곡조만을 만들 수 밖에 없었던 우륵이 오늘날의 가야금 연주를 듣고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