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을 보는 창/느낌있는 여행

정조의 애절한 사부곡, 사도세자와 정조의 융건릉

 

정조의 애절한 사부곡, 사도세자와 정조의 융건릉

조선의 역대 임금 중 영조와 정조의 이야기는 워낙 드라마틱해서 방송드라마나 연극 영화 등의 소재로 많이 쓰인다. 영조와 그의 아들 사도세자, 그리고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까지 삼대를 이루는 이들의 삶은 처절하고 애닳다.

영조에게 임금의 자리는 무엇이며 정치는 무엇이길래 천륜을 저버릴만큼 지독한 아비여야 했을까?

한 나라의 세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비의 손에 의해 뒤주 속에서 극심한 고통 속에 죽어간 사도세자, 그리고 그런 아비를 지켜보기만 해야했던 어린 아들 정조, 이제는 저마다 한을 품은 채 고요히 잠들어 있는 그 곳에 다녀왔다.

 

 

화성시에는 사도세자와 그의 비 혜경궁 홍씨의 묘인 융릉과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 그리고 그의 비 효의왕후 김씨의 묘인 건릉이 있다. 능 앞 주차장 입구에는 '융릉.건릉'이라 써 있는 팻말이 높이 서 있다. 

4-5미터는 됨직한 키 키 큰 소나무가 마치 아치를 그리는듯한 소나무숲을 지나니 융릉과 건릉의 갈림길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타난다. 우선 사도세자의 능인 융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 역시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릉이다.

사도세자의 묘는 원래 휘경동에 있었으나 정조가 이후에 이곳으로 옮겨 현륭원이라 칭하였다. '낳아주고 길러주신 현부에게 융숭하게 보답한다'는 뜻이 담겼다고 한다. 정조의 지극한 효심이 그대로 드러나는 이름이다.

후에 고종이 장조로 추존하고 융릉이라 칭했다. 그래서 융릉은 묘와 원 그리고 능까지 모두 거친 조선시대 유일한 능이라고 한다.

 

능의 꼭대기에서 제를 지내는 정자각까지는 언덕처럼 경사가 져 있는데 다른 능과 달리 계단처럼 평평한 곳이 조성되어 있다. 무심히 지나치려는데 설명해주시는 말을 들으니 아버지 사도세자가 굶어 돌아가셨으니 능에서 정자각까지 오시려면 힘들 것이라 여겨 중간에 쉼터를 마련한 것이라고 한다.

정조의 깊은 효심에 감동하고 또 감동할 따름이다.

 

 

정자각 오른쪽에는 비각이 있는데 능의 주인인 사도세자와 그의 비 효의왕후에 대한 소개와 고종이 융릉으로 정한다는 글이 새겨진 비문이 있다.

 

융릉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용주사라는 절이 있는데 이곳은 정조가 사도세자를 위해 지은 절이다. 불교를 억압했던 시대에 위험을 무릅쓰고 절을 지어 아버지를 위로하고자 했던 정조의 마음이 드러나는 절이다. 융릉은 비운의 사도세자였지만 지극한 효심을 가진 정조의 갸륵한 마음이 어느 곳에에서나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따뜻한 능이다.

 

융릉의 둘레를 크게 돌면 건릉으로 이어지는 산책로가 있다. 오솔길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드는 한적한 산책로에는 운동복을 입고 걷기를 하는 이곳 주민분들도 눈에 띈다.

 

건릉의 모습도 융릉과 크게 다르지 않다.

능 안에는 들어갈 수가 없어서 정자각과 비문 등 밖에는 볼 수 없지만 살아생전 오붓하고 화목한 보통의 가족을 꿈꿨을 정조의 한이 고요한 기운으로 느껴지는 듯 했다.

한 궁궐 안에 살아도 가까이 곁에 갈 수 없었고 그래서 아픔도 위로도 해드릴 수 없었던 안타까운 아들이었다. 이제 죽어서나마 아버지의 곁에 묻힌 그의 감회는 어떨까?

마음 같아선 정조를 아버지 사도세자와 함께 합장해 주었으면 좋았으련만 .... 손을 뻗으면 닿을듯한 거리에 아버지 어머니가 계시고 아들과 며느리가 있으니 매일 밤 모여 못다한 이야기를 아직도 나누고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