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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여성상은 남녀차별이 아니라 남녀평등이었다

 

역사 속의 여성상은 남녀차별이 아니라 남녀평등이었다

남학생 부모들은 아들이 남녀공학에 진학하는 걸 싫어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성적에서 여학생들이 우위를 차지하기 때문에 입시에 반영되는 내신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외무고시 합격생 중 여성이 절반을 넘었고 사법고시도 합격생 40%가 여성이 차지하며 약사는 64%가 여성이고 의사나 한의사 등도 여성 비율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한 자녀 집안이 늘어나고 진학에 대한 남녀차별이 사라지다보니 여성의 진학이나 사회진출이 늘어나는 건 당연하다. 이렇게 각종 고시에 여성합격자가 많다는 건 남성보다 여성이 더 똑똑하다는 걸 의미하는걸까? 이 문제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적어도 능력에 있어선 남녀차이가 없다는 사실은 이제 인정해야할 듯 싶다.

 

역사 속의 여성상은 남녀평등

드라마 '대왕의 꿈'에 나오는 등장인물 중 여성들의 면면을 보자면, 남자  못지 않은 카리스마와 리더쉽을 발휘하는 선덕여왕과 그녀의 정치적 맞수인 승만왕후가 눈에 띈다. 이들은 미력한 진평왕이나 아직 정치적 세력을 얻지 못한 김춘추 보다 더 강한 카리스마로 화면을 압도하고 대중을 사로 잡고 있다.(아직 미숙한 부분이 보이기도 하지만)

 

 

특히 선덕여왕의 박주미는 공주이지만 왕을 대신해 화랑들을 휘어 잡고 있으며 아버지의 뒤를 이어  당당하고 위엄있는 군주의 모습을 보이며 백성과 군사들을 아우르는 통솔력을 발휘한다. 목숨을 위협받으며 전쟁터로 뛰어들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승만왕후의 모습은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있지만 삼국시대 여성들의 당찬 모습을 보여 준다.

적어도 조선시대 유교가 들어오기 이전에는 크게 남녀차별을 받지 않았다. 호적에 등재되는 것부터 시작해서 재산분배나 제사를 모시는 것 등 모두 아들이나 딸이나 평등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태어나는 순서대로 호적에 올랐으며 아들이 없으면 딸이 가문을 이어받고 재산 상속을 받았으며 제사도 지냈다.

유교적 제사는 조선시대에 나타난 것으로 그 이전에는 돌아가신 분의 제사는 절에서 모셨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형제들이나 자매들이 서로 돌아가며 제사를 주관하고 집안을 관리했다. 그리고 당시엔 아들이 없는 집안의 달은 결혼 후  바로 남자 집(시댁)에 가는게 아니라 출한 후 어느 정도 아이가 자라면 시댁으로 갔다고 한다.

 

과거 500년의 흔적은

현모양처의 대명사 신사임당도 19세에 결혼해 아이를 낳고 키우다 38세에 시댁으로 갔다고 한다. 오랫동안 내려온 전통과 풍습이라  나라에서 유교를 널리 알렸음에도 조선 초.중기까지는 이전의 풍습이 고위직에나 백성들에게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보여진다.

천년 전 조상들은 남녀차별이 지금만큼 크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후 500간 여러가지 역사적인 현실과 정치인 이유로 남녀차별을 두고 나라를 다스렸다. 이제 다시 남녀는 능력에 있어서 차이가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여성의 참여가 절실해졌다.

 

그리고 실제로 여성들의 법적인 지위나 사회적인 지위가 나아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남녀차이가 아닌 남녀차별의 인식은 남성에게도 여성에게도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이것이 흐려지려면 앞으로 500년의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천년 전 그 당시만큼으로 돌아가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