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positorium/History

되물림되는 사도세자의 비극, 강화도령 철종의 비극적인 삶

 

되물림되는 사도세자의 비극, 강화도령 철종의 비극적인 삶

아버지 영조의 눈 밖에 나는 바람에 뒤주 속에서 고통 속에 죽어간 사도세자에게는 혜경궁 혜빈 홍씨가 낳은 정조 외에도 2살에 죽은 맏아들과 2명의 딸이 있었다. 그리고 훗날 빈으로 추대된 숙빈 임씨와 경빈 박씨 사이에 3남 1녀를 두었다.

 

하지만 사도세자의 적장자인 정조만 할아버지 영조의 사랑을 받으며 대를 이을 왕손으로서의 보살핌을 받았다. 그 외 사도세자의 서출 자식들은 돌보지 않았다.

 

사도세자의 서자, 왕위에 오르다

그 중 숙빈 임씨의 소생인 은언군은 사사로운 사건, 사고들을 일으켜 영조의 노여움을 사 동생 은신군과 함께 제주도로 귀향을 가게 되었는데 동생 은신군은 귀향지에서 병으로 죽었다. 영조가 죽고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이복형제인 은언군을 용서하고 작은 벼슬을 주었으나 은언군은 여전히 사건, 사고에 개입되어 다시 강화도에 유배를 가게 되었고 아들 셋을 두고 죽었다.

그 중 막내아들 전계군이 비운의 왕, 바보왕 철종의 아버지이며, 철종의 생모는 전계군의 두번째 부인이었다. 그러나 철종은 조실부모하고 이복형제의 생모(전계군의 첫번째 부인)에게 양육되다가 19세에 당대 최고 세력가인 안동김씨에 의해 헌종의 뒤를 이어 25대 임금으로 추대되었다.

 

 

당시 철종은 왕족이었음에도 학문도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끼니마저 걱정해야하는 가난한 삶을 사는 농부였다. 조부인 사도세자의 아들 은언군이나 아버지 전계군은 왕족으로서의 삶을 조금이나마 누렸을지 모르나 철종의 삶은 태어날 때부터 가난한 여느 농민의 가정과 별다를게 없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갑자기 왕의 자리가 주어졌다.

 

강화도령의 비극적인 삶

1970년대, '임금님의 첫사랑'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당시 나이가 어렸던 내 기억 속에도 연기자들이 떠오르는 걸 보면 꽤 인기있는 드라마임에 틀림이 없다. 가마를 타고 궁으로 끌려(?)가면서 서로를 애타게 부르던 원범(철종)과 양순이의 모습이 아직도 어렴풋하게 기억난다.

자신이 왕 위에 올랐으니 내가 좋아하는 여자 한 명쯤 곁에 둘 수 있겠다 생각했지만 결국 그들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할 수도 없었던 바보 같은 철종이 구중 궁궐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주색잡기뿐이었다. 허수아비처럼 자신을 왕위에 앉혀 놓은 권력자들에 의해 언제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를 맨 정신으로 버텨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돌아가겠다고 약속했던 강화도의 양순이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현실과 결국 그녀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안동김씨 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함것으로 추정) 상실감, 그리고 태어나는 아이들마다 모두 단명하니 견딜 수 없는 자책감으로 시달렸음은 불보듯 뻔하다.

19세에 궁에 들어와 14년간 보위에 있었으나 이렇다 할 업적하나 남기지 못했으며  5남6녀 중 오직 한명의 옹주만이 살아 남았다. 나머지 10명의 자식들은 태어나던 날 죽거나 길어야 1년 남짓 살다가 모두 죽었다. 단명을 타고 난 것인지 아니면 아비의 업보때문에 의도적인 죽임을 당한것인지 알 수 없으나 자신을 탓하며 가슴을 쳤을 철종의 비애가 전해져 온다.  

 

▲ 예릉(조선 25대 임금 철종과 비 철인왕후의 능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산38-4 / 사적 제200호)

 

고조 할아버지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삶이 철종에 이어 고종과 순종까지 대물림되고 조선의 왕조는 문을 닫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