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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itorium/History

빗나간 모정에 요동친 조선왕조 - 인수대비와 폐비윤씨

 

빗나간 모정에 요동친 조선왕조 - 인수대비와 폐비윤씨

세조의 맏며느리인 인수대비, 그녀는 세조 때 좌의정을 지낸 한확의 딸이다. 그녀의 고모들은 명나라에 공녀로 보내졌으나 명나라 왕의 눈에 띄어 후궁이 되었고 그 후광으로 한확은 조정에 나가게 되고 명나라와의 관계가 도움이 되어 한확의 딸은 세조의 며느리까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21살에 남편인 의경세자가 죽었고 그녀가 낳은 아들은 시동생(훗날 예종)에게 밀려 세자가 되지 못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병풍처럼 그녀의 뒤를 봐 주던 아버지마저 돌아가시자 그녀를 돌봐주는 사람은 없었다. 한 때 국모의 자리를 꿈꾸었을 그녀의 몰락이었다.

 

 

인수대비와 성종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몰락하던 그녀의 손을 마지막에 잡아주었다. 8살에 세자가 되어 19살에 보위에 올랐던 시동생 예종이 보위에 오른 지 1년여 만에 죽자 그녀의 아들이 조선의 9대 왕(성종)이 된 것이다.

다시는 들어갈 수 없을것만 같았던 궁에 왕의 어머니로서 다시 들어가게 된 그녀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그런 절실함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보위에 오르기 직전 죽은 남편에 대한 불안한 기억 때문이었는지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는 성정이 엄한 분이었다고 한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남편마저 잃은 나약한 여인의 모습을 감추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인수대비는 불심도 높고 당시에 들어 온 성리학에 대한 학문적 지식도 매우 높은 분이었다고 한다. 궁궐에 다시 들어와 가장 윗전의 자리에 앉은 그녀가 궐내의 기강을 어찌 잡았을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성종의 부인은 한명회의 딸이었다. 원래 성종은 돌아가신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이었는데 장남의 건강이 좋지 않아 둘째인 성종이 보위에 오르게 된데는 장인인 한명회의 입김도 한몫했다. 하지만 그녀(공혜왕후)는 슬하에 자식을 두지 못한채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성종은 많은 후궁과 많은 자식들이 있었는데 그중 유독 후궁 윤씨를 총애하였다.

 

인수대비와 폐비윤씨, 그리고 연산군

성종은 그녀를 중전의 자리에 앉히고자 했지만 인수대비는 후궁 윤씨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초라한 그녀의 가문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엄격한 인수대비와 달리 가벼워 보이는 윤씨의 행동거지 또한 눈에 차지 않았다. 그것을 가문이 초라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것이라 여겨 혹여 성종에게 피해를 입힐까 두려워 했던 모양이다.

마땅치 않게 자신을 보는 시어머니가 며느리도 좋을리가 없다. 결국 성종의 뜻대로 윤씨는 중전의 자리에 올랐지만 견고하지 못한 중전의 자리가 항상 불안했다. 초라한 그녀의 가문은 그녀를 지켜줄 만한 인재가 없었고 시어머니 인수대비의 탐탁치 않은 눈길과 중전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많은 후궁들 사이에서 그녀의 불안증세는 강박증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결국 다른 후궁들을 저주하는 비방이 들키고 이로 말미암아 말다툼 끝에 성종의 얼굴에 상처를 낸 그녀는 폐위되고 궐 밖으로 내쫓겼다. 다시 입궐의 날을 기다렸던 그녀에게 사약이 내려지고 죽으며 흘린 피 묻은 저고리를 아들(연산군)에게 전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인수대비가 아들인 성종의 탄탄한 임금 자리를 지켜 주기 위해 이름 있고 힘 있는 가문의 여식으로 중전을 앉히고자 했던 마음을 같은 어머니로서 이해할 수 있다.  임금의 자리가 한 번 앉으면 천년만년 그냥 있는다고 해서 지켜지는 자리가 아니란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자식 지키자고 남의 자식을 밀어낸 그녀는 손자(연산군)에게 맞아(?) 병석에서 죽고 말았다.

폐비 윤씨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직 어린 아들과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불안한 중전의 자리는 바람 앞 등불 같은 그녀를 마구흔들어 대고 이성을 잃게 만들었다. 자신을 지키는게 어린 아들을 지키는 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 그녀의 바람대로 자신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지만 억울한 어머니의 죽음에 많은 핏물로 복수를 감행한 그는 끝내 왕의 칭호를 받지는 못했다.

 ▲ 폐비윤씨의 묘(회묘)

 

구구절절한 모정에 가슴이 아프기도 하지만 진정 무엇이 자식을 위한 일이며 자신을 위한 일인지 조금만 더 생각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