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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itorium/History

나폴레옹 제국과 독재자의 몰락 - 브뤼메르 쿠데타와 워털루 전투의 참패

 

나폴레옹 제국과 독재자의 몰락 -  브뤼메르 쿠데타와 워털루 전투의 참패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1769년 8월 15일 태어났다. 나폴레옹이 태어난 프랑스령 코르시카 섬은 그가 태어나기 1년 전에 프랑스 영토가 된 곳이다. 그래서 프랑스 인들은이 나폴레옹을  '코르시카 촌뜨기'라고 놀리곤 하였다.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간 나폴레옹은 그 이후로 탄탄대로를 걷게 된다.

나폴레옹은 능력도 있었지만 시대적으로 운이 따르기도 했다. 1789년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은 프랑스 군의 장교 대부분을 차지했던 귀족들이 해외로 망명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하급 장교들이 진급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나폴레옹도 임관 후 고속 승진이라는 행운이 따랐다.

 

나폴레옹의 승승장구, 브뤼메르 쿠데타와 제1제정 시대

1793년 영국과 에스파냐 함대로부터 톨롱 항구를 되찾으면서, 나폴레옹은 국가적인 스타로 떠오르게 된다. 유럽 전체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던 프랑스에게 나폴레옹의 연이은 승전보는 국민들에게  단비와 같은 희소식이었다.

승전을 거듭하던 나폴레옹은 1797년 이탈리아와의 전쟁에는 총사령관으로 참전하였으며, 1799년에는 정치 군인들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다. 이를 '브뤼메르 쿠데타'라 부른다.

 

10년 임기의 제1통령인 된 나폴레옹은 정치적, 사회적 안정을 바라는 국민들에게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로  부상하게 된다. 그리고 1802년 나폴레옹은 헌법을 고쳐 종신 임기를 보장받는다. 한마디로 국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독재를 시작하게 되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1804년 나폴레옹은 국민투표를 거쳐 황제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바로 프랑스 '제1제정'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탁월한 통치자이자 무자비한 독재자였던 나폴레옹은 우선적으로 국내 정치의 안정에 힘쓴다. 토지개혁을 실시하여 농민과 부르조아에게 토지를 나눠 주고 농민들의 세금을 줄여준다. 또한 사회간접자본에 투자를 늘리고 현대 법 체계의 기틀을 잡은 <나폴레옹 법전>을 확립하는 등 많은 치적을 보여준다. 

그러나 탁월한 통치자의 치적 외에도 무지비한 독재자의 면모도 서슴없이 보여주었다. 강력한 검열제도로 언론을 탄압하였고, 영장이나 재판없이 국민을 잡아 가두는 등 인신의 자유를 억압하는 등 프랑스 대혁명의 정신에 반하는 행동을 꺼리낌 없이 저지른다.

 

독재자의 말로, 워털루 전쟁의 참패 

나폴레옹은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위해 전쟁을 이용하였다. 당시의 유럽 상황은 프랑스를 견제하려는 유럽 군주국들이 제3차 대프랑스 동맹을 맺고, 프랑스를 위협해 오던 시기였다. 그 주축에는 프랑스와 오랜 라이벌이던 영국과 오스트리아가 있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는 나폴레옹에게 허무하게 무릎을 꿇었으며 유럽 동부 지역도 나폴레옹의 발 아래 놓이며, 대륙에서는 더 이상 나폴레옹의 적수는 없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섬나라인 영국이었다. 당시의 영국 해군은 세계 최강으로 나폴레옹으로도 해전에는 자신이 없었다.

나폴레옹이 영국을 굴복시키기 위해 생각한 방안이 '대륙봉쇄령'이었다. 1806년 유럽 대륙 전체에 영국과의 모든 교역을 금지시키는 경제 봉쇄령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러시아는 비밀리에 영국과 교역을 하였으며, 이에 대한 응징을 위해 나폴레옹은 1812년 러시아 정벌에 서게 된다.     

그러나 러시아의 전술과 시베리아의 겨울을 고려하지 못한 나폴레옹은 대패하고 말았다. 프랑스 군이 러시아 영토를 떠날 때 45만 대군이 1만 명도 채 남지 않을 정도로 참패를 당하였다. 나폴레옹의 참패는 그 동안 프랑스의 위세에 눌려 있던 유럽 여러 나라를 뭉치게 하였고, 라이프치히에서 유럽 동맹군에 패한 나폴레옹은 황제의 자리에서 쫓겨나 엘바 섬에 유배된다. 1814년에 일이다. 

 

나폴레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815년 엘바섬을 탈출한 나폴레옹은 파리로 진격해 다시 황제를 자리를 찬탈한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행운은 거기까지 였다. 브뤼셀 근방의 워털루에서 영국의 웰링턴이 이끄는 동맹군에게 패배하면서 나폴레옹은 역사의 무대에서 완전히 퇴장하고 만다.

나폴레옹의 재기는 백일천하로 끝났으며,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된 후 1821년 5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