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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의미있는 일상

결국 못 입은 나팔바지의 추억

 

결국 못 입은 나팔바지의 추억

 

무엇이든 풍족하다못해 넘쳐나는 요즘에 비해 옛날엔 어른이고 아이고 간에 뭐든지 부족하고 아쉬웠다. 

그 중 하나가 옷인데 대부분 옷을 물려 입거나 큰 옷을 얻어서 줄여 입는 아이들이 많았다. 새 옷을 사는 경우는 1년에 한두번 명절에나 가능했다. 새 옷을 사면 항상 어머니들은 한칫수 이상 큰걸 사서 소매를 접거나 바짓단을 접어서 입혔다.

정작 그 옷이 맞을 때면 이미  헌옷이 되버리고 말았다.  

 

 

나팔바지의 추억

 

1970년대는 미니스커트가 유행했지만 나팔바지도 유행했었다.

누가 더 넓은 바지를 입나 내기라도 하는 듯 나팔꽃처럼 쫙 벌어진 나팔바지를 입은 젊은 남녀들이 거리에 넘쳐 났다. 바지통은 넓지만 상의는 타이트하게 매치시켜 개성적인 매력을 뽐냈다. 당시 연예인중 나팔바지가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은 바니걸즈, 펄시스터즈등 여성 그룹들이었다.

나팔바지는 한 사람보다는 무리지어 입고 서면 그 풍성함(?) 때문에 나팔바지만의 매력이 더 발산되었다. 그 때 어린 나에게도 꼭 입고 싶은 나팔바지가 있었다.

 

 

 

집 근처 시장 옷 가게에 전시되듯 걸려 있는 나팔바지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남색이 많이 섞인 보라색 나팔바지, 허리 부분은 분홍색과 보라색의 줄무늬 밴드로 되어 있고 골반까지는 일자로 내려가다가 허벅지부터 넓은 통으로 라인을 잘 살려 재단되었다.

양 옆 허리에 둥그런 주머니 라인을 주고 라인을 따라 색실로 꽃수를 놓았다. 꽃수는 나팔바지의 밑단에도 있었는데 4-5cm정도의 높이로 예쁜 꽃이 밑단을 장식했는데 그 모양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색은 다르지만 그 바지를 입은 아이들이 우리 반에도  3-4명이  있었다. 나는 돌아오는 추석에는 꼭 그 바지를 사 달라고 해야지 마음을 먹었고 드디어 엄마를 따라 옷을 사러 갔다.

 

엄마는 청바지를 고르고 나는 바지걸이에 걸려 전시되어 있는 나팔바지를 가리키며 저걸 사고 싶다고 했다. 스윽 쳐다보시더니 가당치도 않다는듯 눈길을 접으셨다. 그리고는 청바지를 꺼내 내 허리에 대 보고 길이를 가늠하셨다. 나는 나팔바지를 입고 싶다고 연거푸 말했지만 한해만 입으면 못입는 옷을 왜 사냐고 하시며 안된다고 했다.

청바지는 길면 접어도 되지만 나팔바지는 길다고해서 단을 접을수도 없지만 안으로 접어 꿰매도 티가 나서 길이에 딱 맞게 입어야만 했다. 몇 번 간청(?)했지만 들어줄 마음이 눈꼽만큼도 없던 엄마는 들은체도 안하신다. 그럼 입어만 보면 안되냐고 되물었고 안 살걸 왜 입어보냐는 엄마 말에 나는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결국 그 해 추석에도 나는 두 단이나 접는 새 청바지를 입었다.

 

 

 

아직도 입고픈 나팔바지

 

결혼해서 첫 아이로 딸을 낳고 옷을 사 줄때면 항상 그 때 생각이 나곤 했다.

그래서 큰 옷은 잘 사지 않고 항상 딱 맞는 옷을 사 입혔다. 마치 한풀이를 하듯 말이다. 다행인것은 시어머님이 딸을 키운 적이 없으셔서 그런지 아기자기한 여자애들 옷과 신발 등에 필이 꽂히셔서 나보다 더 많이 딸애 옷을 사주셨다. 

할머니 덕분에 딸 아이는 원없이 이것저것 다 입어봤다. 한편으론  그런 딸애가 부러웠다. 지금은 스키니가 대세, 언제쯤 유행이 돌아 나팔바지가 올려나 모르겠다. 그나마 지금이 아니면 입을 나이가 넘어가버릴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