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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느낌있는 여행

다음 생에는 필부로 태어나기를....단종의 영월 장릉

 

다음 생에는 필부로 태어나기를....단종의 영월 장릉

조선왕조 5백년의 긴 역사동안 스물 일곱분(두분은 군이지만)의 임금이 계셨다.

오랜 역사 동안 후세에 이름을 남기신 임금중에는 빛나는 업적을 자랑하는 분도 계시고 포악한 성품으로 지탄을 받는 임금도 계시고 구구절절한 사연으로 가슴을 시리게 만드는 임금도 계셨다. 

문종의 아드님으로 태어난 단종은 12세에 문종을 이어 조선 제 6대왕으로 왕위에 올랐으니 숙부인 수양대군의 정치적인 야욕에 의해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땅에 유배되었다가 17세에 사약을 마시고  운명을 달리하였다.

 

단종이 사약을 받은 건 그의 나이 17세인 1457년 6월이었다.

죄인의 신분으로 죽임을 당한 단종의 시신은 동강에 버려졌다고 한다.

그리고 아무도 죄인의 시신을 거두지 말라는 엄명이 있었지만 영월 호장 엄흥도가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동을지산 기슭에 암매장 하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59년 후 중종 때 수소문을 해서 묘자리를 찾아 봉분을 갖추었으며 선조때 상석, 표석, 장명등, 망주석을 설치하고 숙종 때 단종의 신위를 종묘에 모시고 이곳을 장릉이라 했다고 한다.

 

강원도 영월, 지금도 산세가 험하고 산골이 깊은데 예전에는 오죽했으랴 싶다.

중종의 명으로 제대로 된 봉분의 모습을 갖추기 전까지 아무도 돌보지 않았을 이곳의 모습은 맞은 편 산을 보면 대강 짐작이 간다.

소나무 숲에 가려져 잘 보이지도 않을 것이고 찾는 이가 없으니 잡초는 무성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후대에 이르러 봉분이 정비되고 관리가 잘 된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

 

정자각까지 이어지는 선도는 ㄱ 자로 꺽여져 있고 정자각도 규모가 작다.

게다가 정자각에서 목을 한껏 들고 쳐다봐야하는 높은 곳에 단종의 묘가 있는데 정자각에서 절을 하면 묘를 정면으로 보는게 아니라 옆을 보고 절을 하게 된다. 애써 마음을 썼겠지만 여러가지로 다른 왕릉과 비교되어 마음이 썩 좋지가 않았다.

단종을 지키려다 죽은 충신들의 위폐를 모신 장판옥과 단종제를 지낸 후 충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배식단이 곁에 있다.

 

단종의 비극적인 생애는 실록뿐만이 아니라 소설이나 드라마, 연극등으로 많이 소개되었는데 특히 어린 배우가 열연했던 역사 드라마는 단종의 죽음을 둘러싼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목 놓아 오열하던 장면이 뇌리에 오래도록 남았었다.

 

단종은 유배지 영월 청령포에서 죽어가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다음 생에는 그저 평범한 한 사람으로 태어나 평범한 행복을 느끼며 한평생을 편안히 살아보고 싶었을 것이다.

죽어 시신이라도 부모 곁이나 부인 곁으로 보내주었으면 좋았을걸...... 강원도 영월, 유배지 옆 깊은 산 속 홀로 있는 단종의 묘 장릉, 지금은 너무나 오래 되서 한양가는 길을 잊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