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을 보는 창/의미있는 일상

인명경시 풍조를 줄이고자 만든 '선한 사마리아인 조항'

 

인명경시 풍조를 줄이고자 만든 '선한 사마리아인 조항'

 

유럽의 선한 사마리아인 조항

싸움을 말리는 과정에 일어난 폭행이나 구조를 위한 기물 파괴 등 위급상황에서 일어난 피치 못 할 피해에 대해서는 배상 책임이 없다는 법 조항이 있는데 바로 '선한 사마리아인 조항'이다. 유럽에서는 '선한 사마리아인 조항'을 엄격히 적용해, 충분히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면했다면 징역이나 벌금을 물게한다고 한다.

그리고 '선한 사마리아인 조항'의 피치 못 할 피해에 대해서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라는 단서조항이 있어 자발적 선의를 유도하고 있다.

위급한 상황에 대한 판단은 위험한 상황에 처한 당사자의 입장이 가장 중요하지만 어쩌면 그 상황을 보게 되는 구조자의 입장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도와달라는 요청이 없어도 인간이 가지는 본능으로 '위험한 상황이다'라는게 느껴지면 반사적으로 행동이 따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급한 상황이 정리되고 나면 결과에 따라서 구조자가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하는 경우가 있다. '물에 빠진 놈 건져주니 보따리 내 놓으라'는 식이지만 현 상황에서는 구조자의 의견보다는 피해를 입은 사람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되는 경향이 크다.

그러니 좋은 일 해 놓고도 낭패를 보는 경우가 허다해 인터넷을 보면 이런 억울한 경우에 대해 호소하는 글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니 점점 사람들이 내 일이 아니면 선뜻 나서길 꺼려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국내의 선한 사마리아인 조항

지하철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진땀을 흘리며 괴로워하는데 나를 포함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렇게 밖에 못하는 것은 이전에 들었던 낭패 본 이야기들을 들었던 기억때문일 것이다. 겨우 내가 한 일은 차내 전화기로 기관사에게 차량 번호와 아픈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이 전부였다. 기관사와 역사 직원이 다음 역에서 그를 부축해 내렸다.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하고자하는 것은 본능에 가깝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사람을 도와주게 되는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 사회 정서가 점점 그런 호의를 망설이게하고 못하도록 막고 있다.

내가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졌다 하더라도 결과가 그에 미치지 못하면 내 의도와는 관계없이 가해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응급구조를 하다가 내가 다치는 경우 그로 인한 정신적 신체적 모든 피해는 나와 내 가족이 짊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선의의 응급의료(응급사항에 처한 환자를 도울 목적으로 행한 응급처치 등)에 의해 발생한 재산상, 신체적 피해의 면책을 명시한 법률 조항에 '선한 사마리아인 조항'을 적용해 2008년 12월14일부터 시행되고 있으나 아쉽게도 사회정서는 이 조항이 생기기 이전보다 훨씬 더 나빠지는 것 같아 아쉽다.

타인의 위급상황에 주저없이 뛰어드는 인정많고 따뜻한 사회로 돌아가려는 노력은 누구 한 사람만의 노력이 아닌 모든 사람들의 노력과 참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