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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itorium/History

히틀러가 탈출하여 남미에서 잘살고 있다면

그 동안 학교에서 배웠든, 책을 통해 알게 되었든, 아니면 TV 드라마 다큐를 통해 알게 되었든 그 동안 우리가 알고있던 역사는 진실일까?

어쩌면 한번도 이런 의심을 가져보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고 배웠던 역사가 모두 진실이 아니며 지금까지 믿어왔던 정설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즉 절대적인 역사란 없다는 말이다. 

왜 그럴까?

역사적 사실은 권력의 이해관계, 정치사회적 이유 따위로 왜곡되고 은폐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역사적 사실이 은폐되고 왜곡될 때 음모론이 등장하고 진실은 점점 더 왜곡되는 것이다.

그런데 감춰져 있던 진실이 드러나고 미궁속에 빠져있던 사건의 미스테리가 풀리며 역사 인물의 실체가 밝혀질 때, 역사는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세계의 역사 속에서 벌어진 사건 중에는 아직도 끊임없이 의문이 제기되는 역사적 사실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세인의 흥미를 끄는 한 사건에 대하여 그 진실을 파헤쳐 보도록 하겠다.


  틀러는 자살한건가 탈출한건가?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며 세계사의 한 획을 그은 히틀러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과연 히틀러는 죽었을까, 아니면 어딘가에 살아서 독일의 부흥을 또다시 꿈꾸고 있을까?


<알고있는 역사적 사실> 히틀러의 죽음에 대한 기록으로 1947년에 발행된 '히틀러의 마지막 날들'이 유명하다. 이는 연합군 조사 기관의 책임자인 영국인 사학자 휴 트레버 로퍼 대위가 주로 미영 연합군의 포로가 된 독일군 간부들에게 들은 정보를 토대로 쓴 것이다.

운명의 1945년 4월 30일, 베를린 시내를 에워싼 소련군은 포위망을 점점 좁혀가고 있었다. 소련군의 도착이 머지 않았다고 판단한 히틀러는 오늘이야말로 목숨을 끊겠다고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히틀러는 불과 이틀 전에 결혼식을 올린 에바 브라운과 함께 대기실에 나타났다.  히틀러는 측근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고한 다음 지하 벙커에 설치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에바가 그 뒤를 따랐다.

복도에는 친위대 병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사람에게 시체를 보이고 싶지 않으니까 바로 소각해 주게.'라는 히틀러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기다렸다.

히틀러 부부가 방에 들어가고 약 10분이 지난 오후 3시 반, 방안에서 한 발의 총성이 들렸다. 히틀러는 안락의자에 앉아 머리를 옆으로 향하고 오른쪽 팔걸이에 기댄 것처럼 쓰러져 있었다.

병사들은 시체를 담요에 싸서 안뜰로 옮겼다. 준비해 놓은 구덩이에 시체를 넣고 그 위에 140 리터나 되는 휘발유를 뿌렸다.   

5월9일 소련군 조사관 두명이 히틀러의 치과의사였던 브라슈케 박사를 찾아갔다. 그러나 박사는 이미 피난한 뒤였다. 할 수 없이 조사관들은 브라슈케 박사의 조수 호이제만에게 몇개의 의치와 치아 충전물 등을 보여 주었고, 그녀는 그것이 히틀러의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것이 연합군 측이 발표한 공식 기록이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있는 히틀러의 자살에 대한 진실이다.



<알지못한 역사적 사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히틀러의 죽음을 기록한 보고서와 자료 등을 검증하다 보면 많은 모순점이 발견된다. 

히틀러의 죽음을 조사한 것은 공식적으로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소련의 조사이고, 두 번째는 영국의 로퍼 대위가 지휘한 연합군의 조사이다.
소련군의 조사가 먼저 행해졌기 때문에 정밀한 조사가 진행됐어야 했는데 실상은 히틀러의 일기와 같은 중대한 자료를 놓치는 등 조사를 아주 엉터리로 했다고 한다. 게다가 소련군이 로퍼 대위의 조사에 협력하지 않는 바람에 로퍼 대위가 작성한 보고서도 그만큼 신뢰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1960년 5월, 소련의 신문 '프라우다'의 나치스 항복 15주년 기념호에 충격적인 사진이 실렸다. 바로 히틀러의 시체 사진이다. 이 사진은 1945년 5월 5일 베를린 공격부대의 육군 일병인 일리야 시아노프가 히틀러가 자살했다고 여겨지는 지하 벙커에서 촬영한 것이다.
하지만 히틀러의 시체를 정말 불태웠다면 5월5일에 지하 벙커를 점령한 소련 병사가 시체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프라우다'의 기자가 시체 소각을 도왔다는 켐프카(히틀러의 운전사)에게 사진을 보여 주자 그는 사진에 찍힌 사람은 히틀러가 아니라고 했다.


베를린이 함락된 1945년 4월 30일 오후 4시 15분, 베를린의 템펠호프 공항에 젊은 병사들을 가득 실은 비행기 'JU-52'가 도착했다. 비행기에 타고 있던 통신병과 보병은 밖에서 연료 보급을 기다리다가 회색 제복을 입은 히틀러가 SS 고위 관료 몇 명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목격했다.
히틀러가 베를린 함락 직전에 탈출했다면 어디로 도망갔을까? 사실은 히틀러가 U보트로 아르헨티나에 상륙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그 날 U보트 함장이었던 세퍼는 자신의 저서 'U보트 977'에서 놀라운 고백을 했다.
U-977은 통상의 항해 일수를 넘게 활동해야만 했다. 자유와 고전을 향한 항해였다. 그것은 해군 사상 가장 긴 항해가 되었다. 우리는 결과적으로는 터무니없는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그는 살아 있었다. 우리는 그를 은둔지로 데려다 주고 있다.

나치스는 1943년 방대한 국가 재산을 남미로 수송했다. 지폐, 보석, 금 등 대부분이 유대인에게 몰수한것이다. 1944년 6월까지 장갑 트럭으로 보석류를 남스페인 항구로 수송한 다음 U보트에 싣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남쪽으로 150마일 떨어진 U보트 비밀기지에 옮겨다 놓았다.


<과연 히틀러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은 무엇일까?> 
혹시 전 세계가 히틀러의 죽음을 기다리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상황에서 히틀러의 죽음은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연출된 쇼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여러가지 왜곡되고 은폐된 채 히틀러의 죽음이 전 세계에 선언된 것이 아닐까?
세계의 패권을 지고있던 나라들은 우리가 알고있던 이상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음이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