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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itorium/History

상식을 부순 명가사상 - 궤변론인가 변증론인가

 

상식을 부순 명가사상 - 궤변론인가 변증론인가

 

등석의 변론

부자의 아들이 찾아와 묻기를 어떤 어부가 강에서 실종된 아버지의 시신을 건졌다고 사례를 요구하는데 그 금액이 너무 큰데 어찌해야겠냐 물으니 대답하기를

"그 어부가 시신을 줄 곳은 이 댁밖에 없으니 좀 더 기다려 보시오"

그러면 시신이 점점 부패할텐데요 라고 하니 그럴수록 값이 더 떨어질테니 기다리라고 하였다.

다음날 어부가 찾아와 묻기를 부자의 시신을 건졌는데 그 집에서 자기가 요구한 사례금을 주지 않으니 어쩌면 좋겠냐고 하였다.

"부잣집에서는 시신을 가져가야하니 좀 더 기다려 보시오."

그러면 시신이 부패할텐데요 라고 하니 그럴수록 값이 올라갈테니 기다리라고 하였다.

 

 

명가사상의 본질

부자의 아들에게 한 말과 어부에게 한 말을 따로 놓고 보면  각각의 대답은  자신이 최선의 선택을 하기에 알맞는 말이다. 상대의 조바심나는 심리를 꿰뚫고 있으니 '아! 맞다' 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만한 명쾌한 대답이지만 문제는 이 대답이 각자의 머릿속에서 나온 게 아니라 제3자의 머리에서 나온 게 문제다.

제3자가 시킨대로 부자의 아들이 끝까지 기다리면 그는 터무니없는 사례금을 주지 않아도 될 것이며, 어부가 끝까지 기디린다면 그는 감히 평생 손에 쥐어보기도 힘든 거액을 쥘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최후의 승자?는 누구였을까?

등석은 큰 사건의 변론대가로는 겉옷 한 벌을 받았고, 작은 변론의 대가로는 속옷 한 벌을 받았다. 그러나 등석을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혼란에 빠졌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등석은 민중의 풍속을 흐린 죄로 결국은 처형당했다.

등석의 변론은 제자백가 중 명가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오늘 옳다고 했던 것이 내일은 옳지 않은 것이 되고, 또 오늘 옳지 않은 것이 내일은 옳은 것이 되어, 옳고 그름이 날마다 바뀌는 궤변론 또는 변증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명가사상의 영향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사회변혁이 심하여 사물의 이름(명사)와 그 실제의 사물이 서로 맞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였다. 이에 실명 논쟁이 정치와 사회 분야에 대두되었고 명사와 개념의 연구를 전문으로하는 '명가'가 탄생하였다.

하지만 명가의 사상은 어지러운 시기에 사회를 분열시키는 궤변으로 변질되었다. 평소에 바르다고 생각했던 이치들이 흔들리고 그에 따라 논쟁이 불거지며 민심을 나뉘게 하였으며 좋은 게 좋다는식의 궤변이 귀를 어지럽게 하고 판단능력을 흐리게 하였다. 

 

그래서 명가의 사상은 사회 혼란을 부추긴 부정적 사유로 평가된다.

하지만 상식을 부순 명가의 논리는 철학의 생명인 비판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한 셈이기에 중국 고대 철학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데 기여한 사상으로 평가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