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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릴 때 추석은 어땠냐면.. '솔이의 추석 이야기'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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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이네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추석 전에 머리도 자르고 목욕도 하고 명절 음식들도 사고 병원에도 가고 ... 명절맞이 준비로 아주 바쁘다.

추석 전날 드디어 시골에 계신 할머니댁으로 가는 날 새벽부터 길을 나서지만 고속도로는 주차장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불평없이 고향에 가는 들뜬 맘으로 지독한 교통정체를 견뎌(?)낸다. 겨우겨우 시골 할머니댁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큰 당산나무가 어서오라는듯 인사를 건낸다. 할머니도 저만치 마중나와 주셨다.

인사를 드리자마자 명절 음식준비로 엄마는 바쁘게 움직이시고 밤에는 달빛아래 친척들이 모여 앉아 맛있는 송편을 빚는다. 추석날 아침 차레를 지내고 온 가족이 성묘를 갑니다. 성묘를 다녀오니 마을에는 한바탕 놀이판이 벌어지고 모두 모여 농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춘다.

할머니께서 싸 주시는 여러가지 음식을 고맙게 받아들고 솔이네는 서울로 올라간다. 아빠 등에 업힌 솔이는 아직도 할머니댁 꿈을 꾸고 있는듯하다.


'솔이의 추석 이야기'에 그려진 그림은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내가 어릴적  추석날의 모습이 그대로  묻어나 책을 읽는 동안 미소짓게 만들었다.

지금은 한복을 거의 입지 않지만 그땐 제법 한복 입고 인사가거나 나들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그리고 솔이네 동네 사람들처럼 미용실이나 이발소에는 머리를 매만지는 어른들이 북적거렸고 목욕탕도 인산인해였던 기억이 난다.

시장이나  옷집들, 신발가게들은 그야말로 대목장사를 하느라 북적거리고 활기가 넘쳤다.
엄마를 따라 다니며 여기저기 구경다니면 설레는 기분에 한껏 부풀었었다. 당시에 나팔바지가 유행이었는데 바지끝이 쉽게 더러워진다고 안사주셔서 얼마나 속상했었는지...결국 접어서 입을수 있는 청바지를 사고  새로 산 신발까지 더해지면 얼른 집에 가고 싶었었다.

친가댁이 없던 나는 외가댁만 갔었는데 음식 솜씨가 좋으신 외할머니는 맛있는 음식을 정말 많이 만들어 주셨다. 약과나 엿도 만들어 주시고 송편도 아주 예쁘게 그리고 맛있게 만들어 주셨다. 약밥도 맛있었고 식혜(감주)도 맛이었다. 이런걸 모두 직접 만들었다가 손주들에게 주셨다.

지금도 친척들이 모이면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굉장했던 음식솜씨를 기억하며 이야기를 나눈곤 한다.
참고로 외가댁 이모 외삼촌이 7남매이셨다. 사위에 며느리에 손주들까지 합하면 기암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나는 그 분위기가 좋아서 오랫동안 있고 싶었다. 이북에서 혼자 내려오신 아버지쪽으로는 친척이 없었기에 외가쪽 친척들과의 교류가 즐거웠었다. 친가를 갈 일이 없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느긋하게 외가댁에서 명절을 보냈었다. 당연 엄마는 시댁과의 갈등이 없으니 명절 증후군도 없었다.

새 옷에 새 신발을 신고 밖에서 한참 놀다가 들어와도 여전히 맛난 음식들은 충분했고 아직 미혼이었던 막내 이모, 막내 삼촌과 함께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이제는 가끔 뵙는  막내 이모는 아직도 나를 보면 어린애 취급을 하신다. 그말이 기분좋은 건 어릴적 막내이모와의 추억이 따스했었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후 명절 증후군까지 있는건 아니지만 솔직히 명절이 즐겁지는 않다.  아직은 베풀어야 될 대상이 더 많고, 많이 베풀고 싶지만 모두 챙기지 못해 속상하기도 하다. 그리고 언제쯤 어린시절 설레이던 명절 느낌을 다시 가져볼 수 있을지...

모두가 어려운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아이들에겐 오래도록 추억거리가 될 추석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즐거운 추석명절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