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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itorium/History

물보다 진했던 핏빛 조선왕족사(2)


단종 죽음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은 어린 단종이 귀양지에서 수양대군의 명에 의해 결국 죽음을 맞이하며, 그 과정은 단종을 방에 가두고 방을 뜨겁게 달구어 끝내 발을 디딜 곳도 없어진 단종이 몸무리치다 비참하게 죽어가는 장면이다.  

왜 많은 사람이 단종 죽음에 대하여 이렇게 생각할까?
그 이유는 예전의 단종 죽음에 대한 드라마의 한 장면을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방송의 힘이다.  지금 방영되는 드라마에서는 단종의 죽음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하다.

한가지가 더 있다. 이것도 지금 방영되는 드라마에서 나온 장면인데, 김종서의 살해 장면이다.
그는 수양대군의 방문을 받아 자신의 거처에서 기습을 받고 그의 아들과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과연 김종서의 죽음에 대한 역사적 사실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이들 사건에 대한 진실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조선 왕조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겠다.

이번 글에서는 문종의 아들이자 세조의 조카인 단종에 대한 기록인 단종실록에 대하여 알아보겠다.


   단종실록

단종은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비는 정순왕후 송씨다.
1448년(세종30) 8세때 왕세손에 책봉되고 1450년 문종이 즉위하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1452년 5월 문종이 재위 2년 만에 죽자 12세에 왕위에 올랐다.

                                                                                 <사진 : 연합뉴스>

하지만 숙부 세조에게 왕위를 찬탈당한 뒤 1457년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에 유배되었다. 그리고 그 해 10월에 죽음을 당했다.

단종은 204년 뒤인 숙종 24년(1698년) 11월 8일에 노산군에서 '순정안장경순돈효'라는 시호와 함께 단종이라는 묘호와 장릉이라는 능호를 받았다. 단종의 능은 장릉(강원도 영월읍 영흥리)이다. 

                                                                                                                                              ▲ 장릉(강원도 영월읍)

단종실록은 세조때 편찬된 원편 '노산군일기' 14권과 숙종때 편찬된 '단종대왕실록' 부록 1권으로 구성된 총 15권의 활자본으로 되어있다.

1452년(단종 즉위) 5월부터 1455년(단종 3) 윤6월까지인 3년 2개월간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처음에는 '노산군일기'라고 했지만 1698년(숙종 24) 단종이라는 왕호를 회복한 뒤 '단종실록'으로 개명되었다.


김종서의 죽음

단종은 왕위에 올랐지만 너무 어렸기 때문에 모든 정사를 의정부와 육조에서 처리했으며 왕은 최종결재만 하였다. 이렇게 되면서 조정의 권력은 부왕 문종의 신임을 받던 황보인과 김종서에게 쏠렸다.

그러자 이에 맞선 세종 아들들의 세력이 팽팽하게 맞서게 되었다. 
단종에게는 여러명의 삼촌이 있었는데 그 중 수양, 안평, 금성대군 등은 각자 군사를 가지고 있었다. 

수양대군은 자신의 세력을 넓히는 수단으로 장사들과 책략가를 모았다. 그 중 권남이란 자가 식객으로 있으면서 한명회를 추천했다. 한명회는 칠삭둥이지만 지략이 뛰어나 첫 만남에서 수양대군의 맘을 사로 잡았다. 

수양대군은 한명회를 비롯한 모사들과 함께 조정의 권신 황보인, 김종서를 제거하기 위해 치밀한 작전을 세웠다. 어느날 밤 수양대군은 친히 양정과 유숙을 비롯한 몇명의 장정들을 거느리고 김종서의 집을 찾았다. 
김종서를 문앞으로 불러낸 수양대군은 보여줄 편지가 있다며 한 통의 편지를 그에게 전했다. 편지를 받아든 김종서가 달빛에 비춰보는 순간 수양대군이 눈짓하자 임어울운이 철퇴로 내려쳤다. 그리고 아들 김승규가 쓰러진 부친을 껴안자 양정이 칼을 뽑아 목을 베었다.

이어 궁궐에 도착한 수양대군은 입직승지인 최항을 시켜 단종에게 김종서를 죽인 일을 아뢰게 하고 왕을 뵙기를 청했다.
이윽고 수양대군이 단종 앞에 앉아 사건의 전말을 설명하자 단종이 울면서 호소했다.
"숙부, 나를 죽이지 말아주시오." 
"폐하, 염려마세요. 제가 전하를 지키겠습니다."

그런 다음 왕명을 빙자하여 영의정을 비롯한 조정대신들을 차례로 불러들였다. 한명회가 작성한 살생부를 펼쳐 놓고 대신들을 죽이기 위해서다. 이때 황보인, 이양, 조극관 등이 척살되었다.
이어서 안평대군과 매형인 정종(경혜공주의 부마)을 귀양을 보냈다가 사약으로 죽였다.

한편 철퇴를 맞고 쓰러진 김종서가 깨어나 사람을 돈의문 수문장에게 보냈다.
"내가 지난밤 자객에게 부상을 당해 죽을뻔 했다. 빨리 의정부에 알리고 약을 가지고 오너라. 그리고 이런 사실을 안평대군에게 속히 알려라."

그렇지만 수양대군과 같은 편인 수문장은 김종서의 청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하는 수 없이 아들 승벽의 처가에 몸을 숨겼다. 날이 밝은 후 김종서가 아들의 처가에 숨어 있다는 부하들의 보고를 받은 수양대군은 지체없이 군사를 보내 김종서를 참수했다. 이때 수양대군은 아들과 손자까지 죽이고 말았다.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귀양을 간 단종, 그리고 수양대군 형제들의 최후, 왕권을 향한 수양대군의 욕심은 피비린내 나는 왕위찬탈 과정에서 비인간적인 면모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리고 훗날 자신의 안위를 위해 조카인 단종까지 죽이는 비정함을 보여준다.

단종죽음에 대한 기록은 세조실록에 정확히 기록되어 있다. 
다음 글에서는 단종 죽음의 과정이 담긴 세조실록에 대하여 알아보겠다.

<자료 :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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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3 - [세상을 보는 창/Zoom-in@all] - 물보다 진했던 핏빛 조선왕족사(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