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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sitorium/History

한국의 세계 문화유산(1) - 종묘, 석굴암과 불국사, 창덕궁

 

한국의 세계 문화유산(1) - 종묘, 석굴암과 불국사, 창덕궁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은 151개국 911건이 등재되어 있다.

그 중에 우리나라가 보유한 세계문화유산은 10(북한의 고구려 고분군 포함)이며 실제 두 자릿수 이상의 세계 유산을 보유한 나라는 전 세계에 24개국에 불과하다.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의 등재기준은 6가지이며, 이 중에 하나라도 해당되어야만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

 

I.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

II.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할 것

III.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

IV.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

V. 특히 번복할 수 없는 변화의 영향으로 취약해졌을 때 환경이나 인간의 상호 작용이나 문화를

    대변하는 전통적 정주지나 육지.바다의 사용을 예증하는 대표 사례

VI.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 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된 것

 

 

 

그러면 자랑스런 우리나라의 세계문화유산에 대하여 알아보겠다.

 

 

 

종묘(1995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종묘는 한국 건축 미학에서 최고의 단순성과 엄숙함에 지닌 위엄 있는 건축물로 조선의 역대 왕들의 위패를 모신 지엄한 공간이다.

 

 

 

 

 

서울의 종묘 건축은 크게 네 개의 건물군으로 조성되었으며, 해당 건물군은 정전 일곽, 영녕전 일곽, 어숙실 일곽, 그리고 향대청 일곽이다.

 

우선 정전과 영녕전 일곽은 임금의 신위를 모신 종묘의 중심 건물군이며, 어숙실 일곽은 제례때 임금이 머무르던 건물군이며, 향대청 일곽은 일종의 부속 건물로 제례 용품을 보관하던 건물군이다.

 

종묘의 뛰어난 건축적 가치는 동양의 신관을 이해하는 척도가 되기도 하다. 서양에 파르테논 신전이 있다면 동양의 신전으로 종묘가 있다.

 

또 다른 종묘의 가치는 의례문화에 있다. 종묘 중요무형문화재 제56호인 종묘제례와 제1호인 종묘제례악인 남묘대제가 있다. 한 왕조의 제사 의식이 끊어지지 않고 왕조가 사라진 지 100년이 지났는데도 존속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극히 드문 일이다.

 

 

 

석굴암 불국사(1995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불국사에서 석굴암으로 오르는 길은 무척 아름답다. 석굴암과 불국사는 각자의 아름다움을 지녔으며 위치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하나의 거대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신라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통일신라 경덕왕 10, 서기 751년에 김대성의 발원에 의해 창건된 사찰인 불국사는 사적.명승 제1호로 지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국보를 보유하고 있다. 불국사에 포함된 국보에는 다보탑, 석가탑, 연화교와 칠보교, 청운교와 백운교, 비로자나불, 금동아미타여래좌상, 사리탑, 은제 사리 내.외합 등이 있다.

 

 

 

 

 

 

석굴암의 정식 문화재 명칭은 석굴암 석굴이며, 석불사라고 한다. 석굴암의 구조적 특색은 무엇보다 화강암을 다듬어 인공적으로 축조한 석굴 사찰이라는 점이다. 인도, 중국 등의 경우와 같이 천연의 암벽을 뚫고 조성한 천연동굴이 아닌 인공 석굴 사찰이다.

 

 

 

 

 

석굴암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될 당시의 심사위원들은 석굴암을 보고 극찬하였는데, 신라시대 전성기의 최고 걸작으로 그 조영 계획에 있어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이 총체적으로 실현된 유산이라는 점에 탄복하였다.

 

 

 

창덕궁(1997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창덕궁의 아름다움은 자연과의 조화에 있다.

 

창덕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은 동아시아 궁전 건축사에 있어 비정형적 조형미를 간직한 대표적 궁으로 주변 자연환경과의 완벽한 조화와 배치가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아서이다.

 

 

 

 

 

창덕궁의 아름다움은 후원에 있다. 특히 계절에 따라 새로운 아름다움을 안겨주는 창덕궁은 자연과의 조화 그 자체이다. 창덕궁은 1405, 조선왕조 제3대 태종 5년에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어진 궁궐이며 세조 9년에는 6 2천 평이던 후원을 15만평으로 확장하였다.

 

그러나 반복되는 전쟁과 불화로 불에 타버리는 비운을 겪었고 인조 25년에 복구되었으며, 1610년 광해군 때부터 정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여 1868년 고종이 경복궁을 증건 할 때까지 258년 동안 역대 제왕이 정사를 보던 실질적인 법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