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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영화의 반전] 천적관계가 가정의 평화를 지킨다

 

[단편영화의 반전] 천적관계가 가정의 평화를 지킨다

 

 

tv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보게 된 단편영화, 10여 분 정도씩 몇 편이 연이어 방송되었는데 제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장면 장면이 너무나 인상적이다. 반전이 있는 장면에서는 박장대소까지 하게 되었다. 

 

 

살벌한 독립영화

 

초등학교 4-5학년 쯤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식은 땀을 흘리며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있다. 아이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유는 곁에서 팔장을 끼고 자신을 노려보는 엄마때문이다.

 

마치 대상을 찾은 킬러처럼 아이에게 총부리를 겨누며 엄마가 송곳처럼 찌르는 말을 한다.

"이건 절대로 틀리면 안 된다고 했지?" 도형의 넓이를 구하는 문제가 틀리고 말았습니다.

금방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것처럼 엄마는 총을 더 가까이 아이에게 들이밀고 아이는 죽음을 눈 앞에 둔 것처럼 겁을 먹은 표정이 역력하고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엄마는 다시 삼각형 공식! 사각형 공식! 사다리꼴 공식!을 쓰라며 아이를 재촉하고 아이는 더욱 비지땀을 흘리며 공식을 써 내려간다. 화면에 보이는 연필 잡은 손은  달달 떨리고 혹시 틀려서 아이가 총탄에 스러질까 긴장감이 돈다.

 

 

 

 

 

그러다 결국 아이는 마름모공식에서 막혀 버리고 말았다. 겁에 질려 변명을 하는 아이에게 더 이상 봐줄 수 없다며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총소리와 함께 엄마가  쓰러진다.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쓰러진 엄마의 등 뒤에서 총부리를 잡고 있는 여고생이 외친다.

"교복 다려 놓으랬지. 도대체 집에서 뭐 하는 거야!" 독기 어린 표정의 여고생이 쏘아 붙이듯 쓰러진 엄마에게 말하는 도중에 총소리가 나고  이마에서 피가 흐르며 여고생이 쓰러진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여고생의 뒤에는 아까 겁에 질렸던 초등학생 아이가 총부리를 여고생에게 겨눈 채  한마디한다.

"누나! 내 방에 들어올 때는 노크를 하랬지!" 아이의 외침과 함께 영화는 끝난다.

 

 

 

인간 천적관계

 

마지막 장면에서 개그콘서트가 생각난 건 예상치 못한 반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빵! 웃음이 터져버렸다.  나는 정말 박장대소했다.

 

초등학생 아이의 천적은 엄마입니다.

사춘기 딸과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에 올라가는 아들을 둔 대부분의 엄마들 모습이 감독의 재치있는 위트로 잘 표현되었다. 아직 엄마의 잔소리가 마냥 무섭기만한 초등학생 아들을 향해 엄마는 엄마의 권위를 총처럼 겨누고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하고 협박까지 한다.

 

엄마의 천적은 사춘기 딸이다.

여고생 딸은 자기 교복은 다려 놓지 않고 동생에게만 붙어 있는 엄마가 짜증스럽다. 왜 내 말을 무시하냐며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엄마에게 총을 겨눈다.

 

누나의 천적은 남동생이다.  

내방에 들어올 때 노크 하라는 말을 누나는 또 무시했다. 지난번에 분명히 마지막 경고라고 했건만 또 누나는 내 방문을 노크도 없이 열어 버렸다. 가만 둘 수 없는 누나이다

 

 

 

평화유지는 천적관계 때문에?

 

엄마가 총을 겨누고 아들이 불안에 떨고 누나가 피를 흥건히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 등 조금 과장되고 극단적인 표현이 불편스러운 영화였지만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나 그 가족들이 본다면 아마 200% 공감하였을 것이다.

 

누나와 남동생인 우리 애들도 초등학교 시절 별것도 아닌 일로 참 많이 다투었다. 사춘기가 되니 영화에서처럼 둘째인 아들은 내 손안에 잡혀 있는데 중학생인 딸은 사춘기로 까칠해져 관계가 소원해졌었다. 그런 누나를 이기는 게 아들녀석이었다. 영화에서처럼 말이다.

 

무섭다기보다 껄끄럽다가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가족간에도 나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고 내가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마치 '천적'처럼 말이다.

 

 

 

 

 

집안에서의 천적관계는 나이의 위아래도 없고 남녀 차별적인 성별의 구분도 없다. 왜 그런 것인지 궁금하지만 원인도 모르겠다. 그저 자연스럽게 형성된 관계가 천적인 것이다.

 

개성이 서로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그나마 평화를 유지하는 이유는 나의 천적에겐 또 다른 천적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