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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창/동화로 보는 세상

애닳고 안타까운 엄마여우를 위로하며' 여우의 전화박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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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없지만 엄마여우와 아기여우는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 여우가 사는 산기슭에는 오래된 전화박스가 흐린 불빛을 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행복하게 지내던 어느날 아기여우가 시름시름 앓더니 그만 죽고 말았다.

넋이 나간 듯한 엄마여우는 살아갈 의지마저 잃은체 먹지도 않고 꼼짝하지도 않았다.
우연히 고개를 들었을때, 멀리 희미하게 비치는 따스한 불빛에 끌려 천천히 다가가보았다.

전화박스 안에는 꼬마가 어딘가에 전화를 걸고 있었고 그 아이를 보는 순간 죽은 아기여우 생각에 엄마여우는 몰래 숨어서 뚫어져라 보고 또 쳐다 보았다.

꼬마는 멀리 도시병원에 떨어져 있는 아픈 엄마와 매일매일 전화를 하며 보고픈 마음을 달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아이가 "엄마~" 부르면 엄마여우는 자기를 부르는 아기여우가 떠 올라 속으로 "왜~아가"라며 대답하곤했다.

매일 그 아이 몰래 엄마여우는 그 아이를 숨어서 지켜보았다.
그런데 그 전화박스가 고장나서 철거될거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곧 그 아이가 전화를 걸러올텐데 ... 마음이 조급해진 엄마여우는 요술을 부려 전화박스로 둔갑했고 전화를 하는 아이의 따뜻한 체온을 고스란히 느끼며 엄마여우는 너무나 행복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엄마가 있는 도시로 이사가게 되어서 더 이상 전화를 하지 않아도 된다며 신나게 엄마와 전화를 했다. 엄마여우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곧 행복한 얼굴이 되었다.
엄마여우도 그 아이 덕분에 위로를 받았고 이제 용기도 생겨 씩씩하게 일어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래 전에 이 동화를 읽고 아기여우를 잃은 엄마여우의 감정이 느껴지는 듯해 가슴이 찡했던 기억이 난다. 다시 읽어보니 그때 그 느낌이 그대로 되살아난다.

서로 마주보며 미소 짓는 엄마여우와 아기여우의 모습은 여우라는 동물이 아니라 사람처럼 보여지기까지 한다. 아기를 키우는 가정이라면 이런 똑같은 모습이 찍힌 사진이 1-2장씩은 있기 때문에 그 모습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아기를 낳아보았거나 키워 본 엄마들은 감정이 풍부해져 감정이입이 빨라진다. 그래서 아기엄마라면 아기를 잃은 엄마여우의 마음이 헤아려 질 것이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생떼같은 자식을 잃은 어미의 마음이 어떨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던가? 맞는 말이지만 어찌보면 이것만큼 고통스런것도 없을 것이다.

가슴에 묻었지만 언제나 같이 있기에 늘 생각이 떠나지 않고 생각나는데... 기억하는데... 보지 못하고 만지지 못하니 그 고통이 얼마나 크겠는가?

그래도 이제는 기운을 차린 엄마여우가 얼른 다시 예쁜 아기여우를 낳아서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간혹 동물만도 못한 부모의 이야기가 뉴스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고 가슴 시린 삶을 사는 엄마여우와 같은 부모들에게 부디 엄마여우의 이야기가 위로가 되고 힘이 되기를 바란다.